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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오늘은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이동녕 선생 나신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497]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천안 출신으로 임시정부 주석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큰 획을 그었던 석오 이동녕 선생의 생애와 나라사랑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기념관이 건립됐다. 기념관은 349규모로 석오의 흉상과 태극기를 배치하고, 연대별 활동상을 소개하고 있다. 선생이 자주 애용한 '산류천석(山溜穿石.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는다)'을 새긴 가로 3m 세로 5m규모의 휘호석도 세웠다. 전시관에는 지난해 9월 선생의 손자인 이석희 씨가 보존하던 친필 휘호와 서신, 임시정부 문서, 초상화 등 유품도 전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010223일 언론에는 위와 같이 천안에 독립운동가 이동녕 선생의 기념관이 열렸다는 기사가 올랐습니다. 선생은 1869년 오늘(217)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신 분으로 72살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었고 임시정부 맨 앞에 서서 대한민국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입니다. 선생은 스무 살 때인 1896년 만민공동회에 앞장섰다가 투옥되었고,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1905년 결사대를 조직하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여 조약의 무효와 파기를 선언하다가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1919년엔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의정원 의장내무총장, 1921년 국무총리 서리를 지내던 중 파벌싸움으로 임시정부가 위기에 놓이자, 안창호여운영 등과 대동단결을 호소했습니다. 1924 재차 국무총리가 되어 군무총장을 겸직하고 초대 대통령대리가 되었으며 이후 국무령이 되었다가 1935년 세 번째로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었지요. 선생은 1939년 네 번째의 주석이 되어 김구 선생과 함께 광복군 창설을 위해 노심초사하다가 급성폐렴 증세로 낯선 이국 땅 기강에서 1940313, 71살의 나이로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순국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모두 단결하라. 일본과 전쟁을 치러 광복을 찾아야 한다.”고 외쳤던 이동녕 선생을 기억하는 날이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