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이 한국 작가를 세대별로 집중 조명하는 격년제 프로젝트 SeMA 삼색전(三色展)으로 2013년 김구림, 2015년 윤석남에 이은 전시인데 순수회화가 아닌 시각디자이너의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기는 처음이다. 이번 전시는 한 사회와 문화의 기본이 되는 글자의 근본 속성을 톺아보고 디자인 교육의 미래를 살펴보려는 취지다.
어제 저녁 5시 전시장 로비에서 열린 <날개파티전> 개전식에서 안상수는 다음과 같은 인사말을 했다. “이 전시를 열면서 정말 고마워해야 할 분이 있습니다. 바로 큰 디자이너 세종 이도(李祹) 그분입니다. 그분이 600년 전에 한글을 먼저 내지 못했다면 이 나라 문화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고, 저 또한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전시는 그 분을 위한 것입니다.”
안상수 작가는 글꼴 디자인, 타이포그라피, 편집 디자인, 로고 타입 디자인, 포스터 제작, 벽면 드로잉과 설치 작업, 문자 퍼포먼스, 캔버스 문자도, 실크스크린, 도자기 타일 따위 다양한 형식 실험으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위한 작업을 해왔다. 그의 작가적 정체성은 세계에서 가장 어리지만 가장 위대한 디자인적 글자인 ‘한글’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조형 언어와 디자인 작법을 만들면서 시작되었고, 그의 작품은 이제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전문가들을 말한다. 그가 만든 ‘안상수체’는 한글을 네모 틀 속에서 해방시키고, 오랫동안 한자의 구속에 갇혀 있던 한글을 현대적으로 탈바꿈시킨 첫 용틀임이었다고 말이다. 또 글자를 그저 말에 종속된 기호가 아닌 디자인이란 또 다른 꾸밈에 의해 새로운 확장성과 아름다움을 창조한 위대한 작업이라고 말이다.
전시장에는 가장 최근의 작업이라는 '홀려라'도 눈에 띈다. 캔버스 위에 아크릴로 그린 문자도 작업이다. 작가 안상수는 "‘홀려라’는 ‘몰입’을 뜻하는 토박이말이며, '창의는 몸을 던져 홀려야 이뤄질 수 있다'는 'PaTI'의 정신을 담은 구호"라고 설명했다.
또 1000×300cm의 거대한 벽면을 화폭으로 삼아 표현해낸 “도자기 타일”도 있다. '도자기 타일' 작업은 마치 악보처럼 문자를 이루는 주요 요소인 ‘소리’를 시각화한 작업이다.
또한 이번 전시에는 파티(PaTI)가 올해 14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하기까지 축적해온 종합적인 성과와 기록을 한눈에 살펴보는 마당도 있으며, 1985년 고안된 안상수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알아보고, 작가가 30여 년간 창작한 타이포그래피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꼭지도 있다.
우연히 들렸다가 전시를 보게 됐다는 전상희(47, 회사원) 씨는 “안상수 작가가 유명한 디자이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작업들을 해왔음은 몰랐다. 디자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내게도 이 전시회는 뭔가 커다란 깨달음을 준다. 한 사람이 한 가지 방향에 빠져 정진했을 때 이러한 엄청난 결과를 도출해낼 수도 있음을 말이다. 이 전시는 한번 봐서는 안 되겠기에 시간을 내 다시 찬찬히 새겨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한글이 위대한 디자인 요소를 지닌 글자임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준 안상수 작가의 결실을 잠시라도 들여다보고 그 꿈속에 함께 해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세종대왕 큰임금은 흐뭇한 맘으로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전시 : 서울시립미술관, 3월 14일부터 5월 14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