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유의(襦衣)는 가운데 솜을 넣고 안팎으로 생무명을 받혀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만든 옷이고, 섬은 가마니를 이릅니다. 다만 지금 쓰는 가마니는 근대에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고, 그 이전에 사용한 것이 섬으로 모양새가 다르지요. 이것도 역시 짚으로 만들었는데, 이불이나 겉옷 대신 썼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섬에 구멍을 뚫어서 손과 목만 내놓게 해서 옷 대신 입은 것입니다.
그밖에 과거시험에서 낙제자의 시험지 곧 낙복지(落幅紙)로 군사들의 옷을 만들기도 했고, 목화를 재배할 수 없었던 함경도에서는 개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는 기록도 보입니다. 이렇게 입을 옷이 변변치 않아 고생했던 백성들에게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와 무명옷감을 만들 수 있게 한 것은 가히 섬유혁명이라 할 만 했습니다. 추위를 별로 걱정하지 않는 지금 사람들로서는 조선시대 백성들의 섬옷과 종이로 만든 낙복지 이야기는 신기하기만 할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