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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오죽헌에 집을 지어 모시고 있는 율곡의 벼루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51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조선시대의 정치가이자 학자로 근세조선의 퇴계 이황과 함께 유학의 쌍벽으로 잘 알려진 율곡(栗谷) 이이(李耳)를 우리는 잘 압니다. 율곡은 보물 제165호로 지정된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났습니다.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검은 용이 바다에서 집으로 날아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기에 율곡의 어릴 적 이름을 현룡(玄龍)이라 하였으며, 그가 태어난 방을 몽룡실(夢龍室)이라 하여 지금도 보존하고 있지요.



 

특히 이곳 오죽헌에는 어제각(御製閣)”이 있는데 여기엔 율곡이 어렸을 때 쓰던 벼루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습니다. 벼루의 크기는 가로 9.1, 세로 16.1, 두께 0.8이며, 벼루 아래 위에 매화 가지를 돋을새김(양각)하였지요. 이 벼루는 1788(정조 12) 정조가 율곡의 벼루가 있다는 말을 듣고 가져오라 하여 직접 보고 친필로 쓴 글씨를 새긴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돌려줄 때 이 어제각(御製閣)을 지어 소중히 보관하게 했습니다.

 

벼루 뒷면에 새긴 글씨는 무원 주자의 못에 적셔내어(涵婺池) / 공자의 도를 본받아(象孔石) / 널리 베품이여(普厥施) / 율곡은 동천으로 돌아갔건만(龍歸洞) / 구름은 먹에 뿌려(雲潑墨) / 학문은 여기 남아 있구려(文在玆)”라는 내용입니다. 이 벼루는 옛 오천 원짜리 지폐에 오죽헌과 함께 올라 있었습니다. 정조의 글처럼 율곡은 지금 없지만 그의 학문은 지금껏 전해내려 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