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시루는 밥을 찌거나 떡을 찌는데 쓰는 도구로 예전에는 보통 가정에 한두 개쯤은 있던 물건입니다. 그러나 절에서 쓰던 시루는 몇 백 명이 먹을 만큼 큰 용량의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69호로 지정된 “속초신흥사청동시루(束草新興寺靑銅甑)”도 큰 시루 가운데 하나지요. 이 시루에는 “襄陽雪岳山神興寺□上室鍮銅道光四年甲申五月日買□奠百斤都監□玄別坐廣□)”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제작연도와 용도를 알 수 있게 합니다.
글씨의 내용으로 보아 이 시루는 양양 설악산 신흥사에서 1824년(도광 4) 왕실의 제사를 위해 청동 백근을 써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루는 신흥사 유물 가운데서 왕실과 관련된 것인데, 절의 규모와 사세(寺勢)를 알려주는 자료로 글씨 가운데 도광 4년은 신흥사가 본격적으로 왕실의 원찰로서 기능을 하고 있었던 때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청동시루는 왕실의 제사인 국기일(國忌日)과 관련된 의식에 필요한 제물을 만드는데 쓰였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큰 시루로는 통도사 청동시루(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0호)가 있는데 통도사에서 600여명의 승려가 이 시루에 떡과 밥을 쪄서 먹었다고 전합니다. 현종 3년(1664)에 만든 통도사 시루는 187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어 제작 장소, 제작시기, 시주자 이름이 또렷이 새겨져 있지요. 이 밖에도 범어사명유제시루 (梵魚寺銘鍮製甑,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6호), 남해화방사시루 (南海花芳寺甑, 문화재자료 제500호) 따위도 오래된 시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