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에 도착하자 잔치를 베풀어 접대하였는데 예조판서가 주관하였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다치바나 야스히로가 후추를 잔칫상 위에 흩어놓으니 기생과 악공들이 서로 빼앗으려고 뒤죽박죽이었다. 야스히로가 자기가 묵는 숙소로 돌아가 탄식하면서 통역관들에게 ”너희 나라는 망한다. 기강이 이미 무너졌으니 망하지 않는 것을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이는 조선 중기의 학자 신경(申炅)이 쓴 《재조번방지(再造藩邦志)》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다치바나 야스히로는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전에 조선을 염탐하러 왔던 일본 사신이지요. 부산에서 한성으로 올라오는 도중에서도 허술한 모습을 보아온 야스히로는 궁궐에서조차 후추를 놓고 아수라장이 된 것을 보고 전쟁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신경(申炅)이 야스히로를 들어 조선인의 기강에 대한 “경계”를 하고자 함이겠지만 하필 그것이 “후추”라니 아이러니합니다. 후추는 열대성 식물로서 고추(苦椒)나 산초(山椒), 천초(川椒, 초피나무)처럼 향신료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향신료보다는 약재로 사용되었다고 하지요. 위를 튼튼하게 해주고, 더위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안 앞 바다에서 1970년대에 발견된 14세기 초의 중국 배에도 후추가 들어 있어서 당시에 중요 교역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