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 토박이말에는 ‘벼’와 ‘쌀’에 따른 낱말이 놀랍도록 푸짐하다. 우선 내년 농사에 씨앗으로 쓰려고 챙겨 두는 ‘씻나락’에서 시작해 보자. 나락을 털어서 가장 알찬 것들만 골라 무슨 일이 있어도 이듬해 봄까지 건드리지 않도록 깊숙이 감추어 두는 것이 ‘씻나락’이다. 그러나 귀신까지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고, 배고픈 귀신이 씻나락을 찾아 까먹으면서 미안하다고 혼자 군소리라도 하는 것일까? 알아들을 수도 없고 쓸데도 없는 소리를 이른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 한다.
봄이 오고 사월이 되면 무논에 모판을 마련하는 한편으로 씻나락을 꺼내서 물 채운 항아리에 담근다. 물에 담가 싹이 잘 나도록 돕는 것인데, 물에 들어가는 그때부터 씻나락은 ‘볍씨’로 이름이 바뀐다. 날씨에 따라 다르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볍씨는 씨눈 쪽에 껍질을 뚫고 움이 트고 싹이 나서 모판에 내다 뿌려야 한다. 모판에 떨어진 볍씨는 곧장 위로 싹을 밀어올리고 아래로 뿌리를 내리며 자리를 잡는데, 이때부터 볍씨는 다시 이름을 ‘모’로 바꾸어 부른다.
모가 모판에서 한 뼘 남짓 자라면 철에 맞추어 모내기를 한다. 모내기는 아침 일찍 모판에서 모를 쪄서 잘 다듬어 둔 무논에다 옮겨 서너 낱씩 포기를 잡아 못줄에 맞추어 심는다. 이렇게 모심기를 끝내면 그때부터 모는 다시 이름을 ‘벼’로 바꾸어 부른다. 벼는 농사꾼의 갖은 정성을 다 받으며 자라나 마침내 새끼를 배고 몸 안에 밴 새끼가 자라면 위로 솟아올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가 바로 ‘나락’이다.
그러나 열매만을 따로 떼어서 나락이라고 하지만, 우선 나락을 밴 그날부터 벼를 모두 싸잡아 나락이라 부른다. 그래서 ‘벼농사’라는 말이 곧장 ‘나락농사’라는 말로 이어지고, 그것을 옴니암니 가리지는 않고 넘나들며 쓰는 것이다.
철이 들어 나락이 익고 고개를 숙이면 때에 맞추어 낫으로 벼 베기를 한다. 벤 벼는 가지런히 널어 말린 다음 볏단으로 묶어서 타작을 하지만, 비가 자주 오는 곳에서는 베면서 곧장 볏단으로 묶어 세워서 말린 다음 타작을 한다. 벼가 타작마당에서 나락을 떨어내면 저는 곧장 이름을 ‘짚’으로 바꾸어야 한다.
짚과 갈라지면 나락은 가마니나 섬에 담아서 가장 소중하게 간수하지만, 찧으려면 언제나 멍석이나 덕석에 널어서 말려야 한다. 말리려고 널어놓았을 동안에도 나락은 이름을 바꾸어 ‘우케’라 한다. 아침까지 가마니에 담겨 있던 나락이 낮에는 멍석에 널려서 우케가 되었다가 저녁이면 다시 가마니에 담겨서 나락이 되는 것이다.
마른 나락을 방아나 절구에다 찧으면 껍질은 벗겨져 ‘겨’가 되고, 드디어 알맹이는 ‘쌀’이 된다. 방아를 아무리 알뜰하게 찧어도 게으른 나락은 끝내 껍질을 벗지 못하고 쌀에 섞여 있는데, 이런 놈은 틀림없는 나락이지만 ‘뉘’라고 부른다. 겨도 쌀눈과 함께 잘게 가루가 된 것은 ‘등겨’라 하고, 굵은 껍질이 남은 것은 ‘왕겨’라 한다. 등겨는 주로 소나 돼지 같은 짐승의 먹이가 된다. 그렇지만 가난에 쪼들리는 사람들은 등겨를 더욱 잘게 빻아서 겨떡(‘겨’가 낯설어지면서 겨떡을 ‘개떡’이라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을 만들어 먹으며 주린 배를 채우기도 했다. 왕겨는 소와 돼지의 우리에 넣어서 밟히면 좋은 거름이 되기도 하고, 불을 피우면 불땀이 좋은 땔감이 되기도 해서 끝까지 알뜰하게 모든 것을 사람에게 내준다.
쌀을 씻어 솥에 넣고 물을 알맞게 부어 불을 때서 끓이면 ‘밥’이 된다. 다 같은 밥이라도 사람이 먹으려고 한 것은 밥이지만 서낭에게 바치려고 지은 것은 ‘메’다. 요즘 메를 더러 ‘메밥’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것은 ‘메’라는 낱말에 불안을 느껴 ‘밥’을 덧붙인 것이다. 세상살이가 많이 달라져 조상 서낭이나 하늘 서낭에게 메를 지어 올리는 일이 사라지는 풍속에서 절로 빚어진 모습이다.
그리고 누룩과 함께 술을 담그려고 쌀에다 물을 조금 적게 부어서 고둘고둘하게 찌면 ‘고두밥’이 되고, 물을 아주 많이 부어서 휘저으며 끓이면 흥건한 ‘흰죽’이 되고, 물을 더욱 많이 부어 쌀 낱이 허물어지도록 마음 놓고 고면 ‘미음’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