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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가을바람 가득한 24절기 상강

[한국문화재발견] 가을걷이로 한창 바빠 부지깽이도 덤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밤중에 된서리가 팔방에 두루 내리니, 숙연히 천지가 한번 깨끗해지네. 바라보이는 산 모습이 점점 파리해 보이고, 구름 끝에는 기러기가 놀라 나란히 가로질러 가네. 시냇가의 쇠잔한 버들은 잎에 병이 들어 시드는데, 울타리 아래에 이슬이 내려 찬 꽃부리가 빛나네. 하지만 근심이 되는 것은 늙은 농부가 가을이 다 가면, 때로 서풍을 맞으며 깨진 술잔을 씻는 것이라네.”

 

위는 조선 중기 문신 권문해(權文海)의 《초간선생문집(草澗先生文集)》에 나오는 상강 기록으로 오늘은 24절기의 열여덟째 “상강”이다. “상강(霜降)”은 말 그대로 물기가 땅 위에서 엉겨 서리가 내리는 때인데,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첫 얼음이 얼기도 한다. 벌써 하루해 길이는 노루꼬리처럼 뭉텅 짧아졌으며, 하룻밤 새 들판 풍경은 완연히 다른데 된서리 한방에 푸르던 잎들이 수채색 물감으로 범벅을 만든 듯 누렇고 빨갛게 바뀐다. 옛 사람들의 말에 “한로불산냉(寒露不算冷),상강변료천(霜降變了天)”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한로 때엔 차가움을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상강 때엔 날씨가 급변한다.”는 뜻이다.

 

 

옛 사람들은 상강부터 입동 사이를 5일씩 삼후(三候)로 나누어 자연의 현상을 설명하였는데 초후(初候)는 승냥이가 산짐승을 잡는 때, 중후(中候)는 초목 잎이 누렇게 떨어지는 때, 말후(末候)는 겨울잠을 자는 벌레들이 모두 땅속에 숨는 때라고 했다. 김형수(金逈洙)의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에도 한로와 상강에 해당하는 절기의 모습을 “초목은 잎이 지고 국화 향기 퍼지며 승냥이는 제사하고 동면할 벌레는 굽히니”라고 표현하고 있다.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진 날 한 스님이 운문(雲門, 864~949) 선사에게 “나뭇잎이 시들어 바람에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고 물었다. 그러자 운문 선사는 “체로금풍(體露金風)이니라. 나무는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것이고(體露), 천지엔 가을바람(金風)만 가득하겠지.”라고 답했다. 상강이 지나면 추위에 약한 푸나무(풀과 나무)들은 자람을 멈춘다. 천지는 으스스하고 쓸쓸한 가운데 조용하고 평온한 상태로 들어가는데 들판과 뫼(산)는 깊어진 가을을 실감케 하는 정경을 보여준다.

 

 

 

이즈음 농가에서는 가을걷이로 한창 바쁘다. 〈농가월령가〉에 보면 “들에는 조, 피더미, 집 근처 콩, 팥가리, 벼 타작 마친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라는 구절이 보인다. 이를 보면 상강 무렵엔 가을걷이할 곡식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 일손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속담에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 "가을 들판에는 대부인(大夫人) 마님이 나막신짝 들고 나선다."라는 말이 있는데, 쓸모없는 부지깽이도 필요할 만큼 바쁘고 존귀하신 대부인까지 나서야 할 만큼 곡식 갈무리로 바쁨을 나타낸 말들이다. 또 이때부터는 슬슬 겨우살이 채비를 서둘러야 할 때다.

 

이 삭막한 서릿발의 차가운 세상. 하지만 국화 뿐 아니라 모과도 상강이 지나 서리를 맞아야 향이 더 진하다고 한다. 꽃은 늘 그 자리에 있는데 향기는 느끼는 자의 몫이며, 상강을 맞아 그 진한 국화 향을 맡을 수 있는 것도 각자의 몫이다. '감국(甘菊)'이라고 불리는 노란 국화로 만든 국화차는 지방간 예방에 좋은 콜린, 대사에 필요한 에너지로 쓰이는 아데닌이 풍부하여 이때 마시면 좋을 일이다. 또 상강 무렵엔 비타민CㆍA, 탄닌, 칼륨과 마그네슘 등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으며 고혈압 예방에 좋은 감을 먹어 좋을 때이고, 그밖에 상강 즈음 먹어서 좋을 먹거리엔 살이 쪄 통통한 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