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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고려 임금의 국새 찍힌 ‘과거합격증’ 보물 지정 예고

고려 후기 불교 경전, 조선 후기 백자도 함께 예고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630년 전에 발급된 고려 시대 과거합격증인 ‘최광지 홍패’ 1점과 고려 후기 선종(禪宗) 경전인 《육조대사법보단경》 1책 그리고 조선 후기 ‘백자 항아리’ 1점 등 책 2점과 도자기 1점을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최광지 홍패(崔匡之 紅牌)’는 고려 말~조선 초에 활동한 문신 최광지(崔匡之)가 1389년(고려 창왕 1년) 문과 ‘병과 제3인(丙科 第三人, 전체 6등)’으로 급제하여 받은 문서로서, 약 630년 전 고려 말에 제작된 매우 희귀한 사료다.

 

 

 

* 홍패(紅牌): 고려~조선에서 발급된 문과(文科)와 무과(武科) 합격증을 말하며, 보통 홍화씨 등으로 붉게 염색한 종이로 발급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음. 반면 생원ㆍ진사시험 통과자에게는 합격증이 흰 종이로 발급되었기 때문에 이를 ‘백패(白牌)’라고 불렀음

* 병과 제3인(丙科 第三人): 고려 말기 문과의 등제(登第) 중 ‘병과’에 해당한다는 의미로, 문과의 등제는 을과(乙科), 병과(丙科), 동진사(同進士)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정원은 모두 32인으로, 을과에 3인, 병과에 7인, 동진사에 22인이었음. 따라서 ‘병과 제3인’의 최광지의 성적은 전체 6등에 해당됨

* 최광지(崔匡之): 태어나고 죽은 해는 모르며, 고려 말기~조선 초기에 활동한 문관. 족보에는 1389년 문과에 급제했다는 기록만 있음. 본관은 전라북도 부안에 집성촌을 둔 전주최씨(全州崔氏)로, 당시 정치ㆍ경제적으로 영향력이 있었던 전주최씨의 위상을 감안할 때 이 홍패는 고려 말~조선 초의 가문과 인물, 제도를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됨

 

홍패에는 '성균생원 최광지 병과 제삼인 급제자'(成均生員 崔匡之 丙科 第三人 及第者)와 '홍무 이십이년 구월 일'(洪武 貳拾貳年 玖月 日)이라는 문장이 두 줄로 적혀 있으며, 발급연월일 위에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이라는 국새(國璽)가 찍혀 있다.

*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 1370년(고려 공민왕 19년) 명나라 황제 홍무제가 고려에 내려준 국새로, 조선 건국 뒤인 1393년(조선 태조 2년)에 명에 다시 반납되었음

 

고려 시대 공문서에 이 직인이 찍힌 사례는 ‘최광지 홍패’가 지금까지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조선 개국 직후인 1392년(조선 태조 1년) 10월에 태조 이성계가 개국공신 이제(李濟, ?~1398)에게 내린 ‘이제 개국공신교서’(국보 제324호)에 ‘고려국왕지인’이 사용된 사실이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고려 시대 홍패는 모두 6점으로, 때는 모두 ‘최광지 홍패’ 보다 빠르지만, 관청에서 왕명을 대신해 발급했기 때문에 국왕의 직인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 문서의 형식과 성격 측면에서도 ‘왕지(王旨, 왕명)’라는 문서명과 임금의 인장이 찍힌 정황으로 보아 임금의 명령을 직접 실천한 공식문서로서 완결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렇듯 왕명의 직인이 찍혀 있고 형식상 완결성을 갖춘 예는 ‘최광지 홍패’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형식은 후대로 계승되어 조선 시대 공문서 제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최광지 홍패’는 1276년(고려 충렬왕 2년)부터 과거합격증에 ‘왕지(王旨)’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했다는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을 처음 확인시켜 준 실물이다. 또한, 조선 시대 문서제도와 관련성이 밀접하다는 점에서 역사ㆍ학술 가치와 희소성이 인정되어 보물 지정 가치가 충분하다.

* 《고려사》 권28, 세가(世家) 권28, 충렬왕 2년(1276) 3월 기록에 따르면 공문서에 ‘선지(宣旨)’라는 용어를 ‘왕지(王旨)’라고 바꿔 사용하게 했다고 함. 그러나 이때 바로 시행되었는지 알려주는 사례는 발견되고 있지 않음

 

‘최광지 홍패’와 같이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은 1책(64장)으로, 1290년(충렬왕 16)년 원나라 선종의 고승 몽산덕이(蒙山德異, 1231〜1308)가 펴낸 책을 고려 수선사(修禪社)에서 당시 제10대 조사(祖師)인 혜감국사 만항(萬恒, 1249~1319)이 받아들여, 1300년(충렬왕 26년) 강화 선원사(禪源寺)에서 간행한 판본이다. 현재 경상남도 사천시 백천사에 소장되어 있다.

 

 

 

* 선종(禪宗):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창시한 불교의 한 종파로, 참선과 개인수양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함.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 8세기 무렵에 전래되어 고려~조선 시대를 거치는 동안 크게 유행하였음

* 《육조대사법보단경》: 중국 선종(禪宗)의 제6조인 당나라 혜능(慧能, 638~713)이 소주(韶州)의 대범사(大梵寺)에서 대중에게 육조(六祖: 중국 선종의 창시자 달마대사의 법계를 이은 제6대 祖師)의 지위에 이르기까지의 수행과정과 문인들의 수행을 위하여 설법한 10가지 법문을 그의 제자 법해(法海)가 집성한 책

* 몽산덕이(蒙山德異, 1231〜1308): 원나라 승려로, 보통 ‘덕이 선사(德異 禪師)’로 불림. 고려 승려들 가운데 혜감국사 만항과 긴밀히 교류해 ‘고담(古潭)’이라는 호를 주기도 했음. 선종 승려 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와 함께 고려 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

* 수선사(修禪社): 1190년(고려 명종 20) 보조국사 지눌(智訥)이 만든 신앙결사단체이자 절

 

《육조대사법보단경》은 혜능의 선사상을 이해하거나 선종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경전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펴냈으며, 백천사 소장본은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온 관련 경전 가운데 때가 가장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조선 시대에 보이는 ‘덕이본(德異本)’ 계열의 책들과도 판식(板式 또는 版式)의 차이점이 보여 고려 시대의 특징을 보여준다.

* 판식: 판본의 양식이라는 뜻으로, 책을 인쇄한 면의 전체적인 짜임새

 

《육조대사법보단경》은 선종의 핵심사상을 파악할 수 있는 지침서이자 한국 선종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불경으로 불교사에서도 중요하며, 이 가운데 백천사 소장본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같은 종류의 경전 중 가장 오래된 판본으로 가치가 높다. 따라서 불교학 연구는 물론, 고려 시대 말기 목판인쇄문화를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서 학술ㆍ서지학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또 다른 보물로 이번에 지정예고된 부산박물관 소장의 ‘백자 항아리’는 부산박물관 소장으로, 조선 17세기 말~18세기 초에 제작되었으며, 높이가 52.6cm에 이르는 큰 항아리다. 아가리와 어깨에 미세하게 금이 간 것을 수리하였으나 거의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형태는 좌우가 약간 비대칭을 이루고 있으나, 자연스럽고 당당하며, 담담한 청색을 띤 백색의 유약이 고르게 발라져 전체적으로 우아한 품격을 나타낸다.

 

 

이 ‘백자 항아리’는 안정된 모양과 우수한 기법 등으로 보아 17세기 후반~18세기 초반의 관요(官窯, 왕실 도자기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관요백자의 제작기술이 완숙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자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 후기 백자 항아리 가운데 크기와 기법 면에서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백자 항아리’는 50cm 이상 크기의 항아리 형태로서의 희소성, 파손이나 수리가 거의 없었던 완전성, 비례가 알맞은 조형성과 잘 발라진 유약, 번조(燔造: 도자기 굽기) 기법의 우수한 수준 등을 근거로 조선 시대 도자사(陶磁史)의 중요한 유물로 평가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한 「최광지 홍패」 등 모두 3건에 대해 30일 동안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ㆍ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