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1924년에 태어나 일제 식민치하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이십대에 6.25전쟁을 겪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서 6남매를 기르며 밥벌이를 하느라 노년에는 성하게 남은 손발톱이 없었다. 95살에 임종하기까지 15년 동안 치매를 앓았다. 처음엔 귀가 잘 안 들리다가 점점 기억과 인지능력을 잃어갔다. 밥벌이로 해 온 바느질의 기억만은 남아, 불편한 손으로 바늘이 들어가는 것이면 무엇이든 집안의 물건들을 꿰매었다.
어느 날부터 ‘아픈 할머니’와 살게 된 손자는, 할머니와 교감하고 난생처음 맞닥뜨리는 낯선 병을 이해하려는 방편으로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당신을 찍는 것에 손사래를 치는 할머니에게 카메라가 혹시 폭력은 아닐까 고민하는 사이, 할머니가 먼저 카메라를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는 다른 가족은 물론이고, 관계의 가운데에 카메라를 두었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손자조차 알아보지 못하였다.


처음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하시던 무렵부터 임종을 맞기까지, 치매를 앓는 할머니의 십수 년을 사진으로 기록한 김선기의 사진 <나의 할머니, 오효순>. 쇠잔해가는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를 보살피는 가족들의 모습 사이에, 실로 삐뚤빼뚤 꿰맨 바느질 자국이 상흔처럼 남아있는 곰 인형의 얼굴이 함께다.
사진 속에서 시간이 흐르며 변화하듯, 청년이던 손자는 그사이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현재는 MBC 영상미술국의 촬영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이런저런 다양한 실상들을 영상으로 기록하여 전파하는 일을 하는 그이기에, 자신의 사적 이야기인 <나의 할머니, 오효순>을 우리가 함께 나누고 생각해보아야 할 질병ㆍ늙음ㆍ돌봄ㆍ죽음에 관한 공적 이야기로서 세상에 내보이게 되었을 것이다.


애잔하면서도 뭉클한 40여 점의 흑백사진이 전시되는 <나의 할머니, 오효순>은, 3월 31일부터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 전시2관에서 열린다.
‘할머니 1주기를 맞아 산소에 꽃을 심었다. 화분에 담겨있던 풀과 꽃이 땅에 뿌리를 내리자마자 벌이 찾아왔다. 할머니께서 찾아와 인사를 한 것처럼 따뜻한 봄바람이 가족에게 불었다.’ 김선기의 작업노트, 마지막 문구다.
문의 : 720-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