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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성황대제

[양종승의 북한굿 이야기 1]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무속신앙의 으뜸 전문가 양종승 박사가 그동안 연재해왔던 “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는 60회로 끝을 맺고 새롭게 “양종승의 북한굿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편집자말)

 

북한굿은 황해도굿, 평안도굿, 함경도굿 등 도 단위로 구분되어 전승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이북5도위원회가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굿은 평안북도 성황대제와 다리굿 그리고 황해도 만구대탁굿, 최영당군당굿, 해주대동굿 등 모두 5종목이다. 이밖에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과 평산 소놀음굿 그리고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꽃맞이굿이 있다. 본 연재에서는 이북5도위원회가 지정한 다섯 개의 북한굿을 소개한다.

 

평안도 성황대제

 

오늘날 남한에서 전해지고 있는 평안도 굿은 성황대제를 비롯한 다리굿, 맞이굿, 재수굿, 내림굿 등이 있다. 1966년 문화재관리국을 통해 임석재와 장주근이 보고한 《무형문화재조사보서 제24호 – 관서지방무가(關西地方巫歌)》에 보면 요왕굿도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요왕굿이란 바다, 강, 우물 등을 관장하는 수신 곧 용왕신을 모시고 풍어 및 풍농을 기원하는 마을의 공동체 의례인데 오늘날에는 전승되지 않고 있다.

 

평안도 굿에서 가장 대표성을 띠는 의례는 성황대제인데 성황굿 또는 줄여 당굿이라고도 한다. 이 의례는 고향 현지를 떠나 남한에서 복원돼 오늘날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과거 본토에서의 그 모습과는 다르다. 우선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동 추렴을 하지 않을뿐더러 성황신을 모셔둔 성황당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을이 없으므로 굿 제차에서도 신여(신주를 모셔오는 가마) 행렬을 하지 않고 굿판에 참여한 관객의 무감서기도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전염병을 막고 지역민들의 무병장수와 평안을 위해 치러지는 굿이라기보다는 과거 전통 형식에 준하여 무대화되고 정형화된 형식으로만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1970-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성황대제가 열리면 평안도 실향민들과 단골들이 굿판에 참여하여 옛모습을 알게 하는 성대한 굿이 개최되긴 하였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그러한 풍경은 사라지고 말았다.

 

과거의 평안도굿은 ‘열두 폭 열두 치마’라고 할 정도로 굿거리 하나하나마다 청배며 재담이며 공수 그리고 거상 등을 꼼꼼하게 빠뜨리지 않고 하였다. 그래서 학습된 무당은 한 거리만 하는데에도 최소 서너 시간이 필요할 정도였다. 또한, 굿이 진행되는 중간중간에는 단골들과 굿판 참가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줄지어 무감서기를 하였다. 단골이나 재가집 또는 참관자가 신복을 입고 신악에 맞춰 강렬한 춤을 추어 굿판의 흥을 돋우면서 신명을 풀어내는 무감서기가 굿거리 사이사이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성황대제는 짧게 해도 최소 사흘 정도가 걸리고 제대로 하면 일주일이 걸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은 아무래도 무당의 청배와 사설, 춤, 놀이, 덕담, 공수 등이 많기도 하였지만, 굿거리 마다마다 이루어진 무감서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성황대제는 하루굿으로 짜여 있어서 청배, 사설, 덕담, 춤, 짓거리 등도 간략하게 이루어 지고 있는 실정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7년과 1938년에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사자료집 《부락제(部落祭)》, 《석전(釋奠), 기우(祈雨), 안택(安宅)》을 근거 삼아 1980년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이 이문웅조사를 통해 보고한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황해・평안남북편》 「제2편 민간신앙」에 평안도 성황대제가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평안남도 평양부 융덕면의 대동관(大同館) 앞 죽비동(竹扉洞) 도성황당(都城隍堂)에는 지역민의 전염병과 질병을 보호하는 여신(厲神)이 성황신(城隍神)으로 봉안되어 있었다. 성역(聖域)으로 삼아진 도성황당에서는 매년 정월이 되면 지역민의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축원하고 국가의 무사태평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비는 거대한 도성황대제(都城隍大祭 또는 성황굿)가 거행되었다. 그리고 이곳 죽비동 도성황당제가 마무리되면 평안도 각 도처에서도 줄지어 성황신(城隍神)을 모시는 마을 단위의 당제가 곳곳에서 행해졌었다.”

 

성황대제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일 뿐만 아니라 규모도 커서 성대하게 치러졌던 지역단위의 의례였다. 경비는 원칙적으로 토박이들이 계를 조직하여 부담하였지만, 마을 사람들도 정성껏 추렴에 동참하였다. 특히 지역 상인들이 재정부담에 크게 한몫하였다. 열흘 전부터는 우두머리와 열 명의 제관을 뽑았는데, 나이가 든 유지들 가운데 제례 지식을 갖춘 사람을 대도감(大都監), 집사, 축관 등의 제관으로 뽑아 의례를 진행케 하였다.

 

의례는 짧게 하면 3일이고 넉넉하게 하면 5일 또는 7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추렴에 동참한 사람이면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굿판에 참여하여 시종일관 잔치 분위기가 되었다. 의례 목적은 마을 사람들을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하고 각 개인의 건강과 입신출세(立身出世) 그리고 지역 사람들의 대동단결이었다.

 

평안남북도 일대에서 성황대제가 크게 열렸던 지역 가운데 한 곳이 영변(寧邊)이다. 영변은 지리적으로 같은 도 내에 있는 희천(熙川) 그리고 평안남도 덕천(德川)과 더불어 1,909m 높이의 묘향산(妙香山)을 감싸고 있다. 묘향산은 민족의 영산으로 일컬어 지는데, 동금강(東金剛), 서구월(西九月), 남지리(南智異), 북묘향(北妙香)이라 하여 동서남북 네방향 기둥으로 삼아지는 4대 명산 중 하나다.

 

《삼국유사》 주(註)에 환인(桓因)의 아들이자 단군(檀君)의 아버지 환웅(桓雄)이 내려왔다는 태백산이 묘향산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묘향산 향로봉(香爐峰) 중턱에는 단군이 무예를 익혔다는 단군굴(檀君窟)이 남아 있다. 이러한 지형을 배경 삼아 열려온 영변의 성황대제는 높은 위상을 날리면서 오랜 전통을 이어 왔다.

 

영변에서의 성황대제는 남문과 북문 성벽 안쪽에 지역 수호신을 모셔둔 남당의 성황신과 북당의 성황신을 모시는 의례였다. 두 곳의 당에서는 19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3년에 한 번씩 번갈아 가며 대대적인 의례를 행하였다. 의례 첫날은 남자 중심의 유교식 제례를 거행하였고, 다음날부터는 무녀 집단이 중심이 되는 무교식 굿을 하였는데 이를 성황굿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성대한 성황굿이 치러진 영변 남성황당(南城隍堂)에는 주신(主神)인 성황신 이외에도 안주증봉대감(安州甑峰大監), 본주대감(本州大監), 평양대성산대감(平壤大成山大監) 등이 모셔져 있었다.(아키바 다카시-秋葉 隆ㆍ마카마스 지조-赤松智城, 심우성 역, 《조선무속의 연구》 1991 참조) 그래서 영변과 인근 지역의 대무당들이 매년 자신의 맞이굿을 할 때면 이곳 성황당에 먼저 들러 성황신을 알현하고 기도를 올리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