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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천하에 버릴 사람은 없다

[‘세종의 길’ 함께 걷기 60]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의 사맛 곧 커뮤니케이션에 대하여 살피고 있는데 ‘코로나 19’ 상태에서 사회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보니 방송에 비치는 뉴스도 단조로워지고 있다. 코로나 관련 뉴스가 중심이고 그 가운데서도 사람을 해치는 범죄 뉴스가 눈에 잘 띈다. 코로나처럼 인명을 해치는 사건과 닮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근간의 사회 범죄를 보면 유아원 선생의 어린이 학대, 아이를 죽인 어머니, 아이를 낳고 유기하는 어머니, n방번 성관련 범죄, 어린아이를 범하는 여러 성에 관한 범죄, 아침에 술이 깨지 않은 채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음주교통, 산업재해 등 사회적 불안까지 유발하는 뉴스가 더욱 극성이다.

 

예년보다 더 많이 발생했다기보다는 사회활동이 위축된 데다 집안에서 텔레비전 등 영상, 인터넷 매체에 접하는 기회가 늘어나다 보니 두드러지는 인상을 받을지 모른다. 성관련 n번방에는 30여 개 방이 있는데 관련된 사람이 2만5천여 명, 동시 접촉자는 25만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이번 주 12일 금요일은 유아성범죄를 저지른 조 아무개 씨가 석방되는 날이다. 경기도 안산시의 피해를 본 집에서는 거꾸로 시민의 도움을 받아 이사 갈 정도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왜 범죄가 줄어들지 않는 걸까. 나라에서 개인에 맞추어 교화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죄인을 교도소에 가두고 몇 년 있다가 다시 사회로 내보낸다. 정신에 멍든 사람이 교도소에 몸만 갇혀 있다가 나온다고 나쁜 버릇이 쉽게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 간단한 범죄인 음주운전은 재범률이 45%에 이른다고 한다.(2020.11.2. 기준) 범죄에 한 번 빠진 사람의 재범률도 결코 줄어들지 않다.

 

살면서 계기를 가지고 마음을 고쳐 잡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어찌 보면 국가는 죄에 대해 수사하고 벌을 주는 요식행위를 할 뿐이다. 인간 그 자체의 삶은 끝까지 개인한테 남아 있게 된다. 이러고 보면 인간이 마음을 추스르는 행위는 결국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사람은 일을 맞아 몸을 추슬러 매번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해야 한다. 마음은 개인의 영역이어서 현대에도 여전히 그 중요함을 느끼게 한다.

 

세종의 시인발정(施仁發政)

 

세종시대에는 사람을 어떻게 보았나.

 

세종은 즉위 때부터 즉위 교서에서 정치를 함에 ‘시인발정(施仁發政)’ 곧 “어짊을 베풀어 전치를 일으켜 세움”이라 했다. 세종의 정치론이요 인간론이라 할 수 있다. 백성은 하늘이 내린 사람들이고 임금은 하늘을 대신해 백성을 다스리는 존재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맹자의 ‘시정발인’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첫째 맹자는 글로서 뜻을 분명히 한 것이지만 세종은 실천 행위의 명제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2천여 년 전에는 정치를 바로 세우고 나서 인(仁)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했다. 세종에 이르러서는 인을 이념으로 하는 정치를 시작한다는 당시에는 진화된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다. 정치와 인의 관계에서 단순히 앞뒤 순서가 바뀐 것이 아니라 세종은 인을 설정하고 실천을 펴나가는 정치를 하려했다.

 

둘째 시인발정의 중요한 점은 인(仁)과 정치의 관계인데 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논어》에서 보아도 쉽지 않다. 인에 대해 19번의 언명이 있는데 인 곧 ‘ㄱ는 ㄴ’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하지 않고 ‘의지가 굳세고 기상이 과감하며 순박한 사람’(子路 二十七)이라고 하고, 또는 자장(子張)이 물었을 때 ‘공손함과 너그러움과 믿음성과 민첩함과 은혜를 베푸는 이 다섯 가지’(陽貨 六)를 인이라고 답하기도 한다.

 

‘인자는 근심치 아니하며’(子罕 二十八) ‘극(克), 벌(伐), 원(怨), 욕(欲)을 자제하여 행하지 아니하는 이를 인자(仁者)라 할까. 공자가 말하기를, 그렇게 하기도 어렵거니와 그것이 인자인지는 나도 알지 못하노라.’(憲問 二)

 

인(仁)은 어찌 보면 이것이 인이라고 하는 순간 인은 사라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인은 인의 행적들로 이루어지게 된다.

 

인(仁)을 파자하면 사람[人], 둘[二] 이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글자다. 사람 사이 사맛[소통]의 문제인 것이다. 서경에서 본심은 도심(道心)이고 인심(人心)은 욕심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사람은 이에 본심을 키워야 하는 데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도심(道心)과 연결되어야 한다. 곧 나의 본심인 도심과 남의 본심인 도심이 만나 일심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한마음이고 인(仁)이다.(이기동, 《퇴계 철학의 본질과 현대적 의미》, 2018, 사다헌) 인은 ‘어질 인’이라 하는데 똑똑하고 착한 것을 일컫는다. 또한, 불교가 지향하는 지식과 깨달음의 뜻도 포함하고 있다.

 

인은 세종에게 있어서 여러 시정(時政)으로 실현된다. 이런 연유로 실록에 비록 중국 고전의 경전과 역사서의 예가 많아도 이는 어디까지나 참고에 지나지 않고 실천에서 나타나는 바가 바로 인(仁)이고 인의 정치인 셈이다. 세종의 정치에서 나타나는 인간에 대한 다른 명제로는 민본(民本)이 있다. 백성을 위하여 먹고 입는 것을 돌보는 데서 출발한다.

 

먹는 것 :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 되고, 먹는 것은 백성의 하늘이라, 심고 가꾸는 일은 정치의 먼저 할 바이나, 진실로 단비[甘雨]가 아니면 이를 어찌 성취하리오.(《세종실록》 7/6/25)

 

의식(衣食) : 의식이 넉넉하면 백성들이 예의를 알게 되어, 형벌에서 멀어질 것이다. 그대들은 나의 지극한 마음을 본받아 백성들을 편안하게 기르는 일에 힘쓰라.(《세종실록》 7/12/10)

 

민본의 또 하나 근간은 천하에 버릴 사람은 없고 천지의 길과 사람의 길이 같고 마지막으로는 백성 모두가 생생지락의 기회를 누리고자 한다.

 

천하에 버릴 사람은 없다[無棄人也] : (박연이 무동의 충원과 방향의 제조, 맹인 악공 처우 등의 일을 아뢰다) 옛날의 제왕은 모두 장님을 사용하여 악사를 삼아서 현송(絃誦)의 임무를 맡겼으니, 그들은 눈이 없어도 소리를 살피기 때문이며, ‘또 세상에 버릴 사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세종실록》 13/12/25)

 

 

세상에는 사람마다 특기가 있고 나름의 할 일이 있다. 이러한 여러 절차는 백성들이 생생지락의 기회를 누릴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마음 고쳐먹기: 개심역려(改心易慮)

 

세종의 마음에 관한 생각은 마음을 고쳐 하늘의 천명을 알고 도(道)에 이르는 길인데 이는 바로 개심 -용심 -항심 -진심(盡心) -천심에 이르는 길이다. 세종의 ‘생생’은 교화ㆍ감화에서 자성ㆍ회개ㆍ재생을 통해 감오(感悟, 느껴 깨달음)를 거치고 자신(自新, 스스로 새로워짐)을 이루는 길에 이른다. “밤과 낮으로 느끼고 깨달아 마음을 고치고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진실로 임금의 명을 우러러 생각하고 밤과 낮으로 느끼고 깨달아 마음을 고치고 생각을 바꾸는 것이 마땅하옵거늘,.(《세종실록》9/10/26)

 

개심의 핵심은 ‘숙야감오 개심역려’로 느낌으로 오고 마음으로 움직이는 감성(感性)과 이성(理性) 곧 기(氣)와 리(理)가 동시에 움직이는 거듭나기[생생]여야 한다.

 

세종의 ‘마음 바꾸기’는 이어 교화ㆍ감화를 이용해 자성을 그 다음에 자각, 회개를 통한 재생 그리고 감오(感悟)를 거쳐 자신(自新)을 이루는 길에 이른다. 사람이 새로워지는 일이 쉬운 일인가. 스스로 그리고 타인과의 공감을 통해 사회 연대 속에 함께 적응해 가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세종시대에 사람이 새로워지는 길을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