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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평화의 도시’ 되어

평창강 따라 걷기 제1구간 – 계속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나는 그동안 삼형제라는 이름이 세 사람의 형제를 나타내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난 2020년 5월 16일 나는 서울에서 내려온 양승국 변호사님 일행을 안내하여 이곳에 다녀간 적이 있다. 나중에 양변호사님이 쓴 답사기를 읽어보니 장군 이름이 ‘삼형제(森炯濟)’이었다. 아이고, 지금까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항상 사실 확인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저지른 실수는 당연하다고 믿던 지식이 잘못될 수가 있음을 증명해주는 매우 적절한 예라고 생각된다.

 

비석이 서 있는 시점에서 속사천 쪽으로 100m쯤 떨어진 곳에 기와지붕을 한 단정한 성황당이 보인다. 옆에 세워진 안내판의 글을 읽어보니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본 성황당의 지나온 유래는 약 백수십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마을에 수호신으로 성황제는 정월과 칠월로 일년에 두 번씩 부락 주민들의 생기(生氣)에 맞추어 유사를 정하여 성황제를 올리며 마을에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사람들의 상호간의 화합을 다졌고 그동안 풍수해로 수차례 보수를 하였으나 여의치 않이하여 새마을사업 당시 함석지붕으로 개량하였고 2002년 마을동회에서 성황당을 새로 건립할 것을 결의하여 철거를 하였고 2004년도 터 메우기와 기초공사를 하였으며 2005년 5월 9일에 성황당 기공식을 가지게 되여 2005년 11월 15일에 목조건물로 재건립하여 마을기금과 여러 주민들의 찬조금으로 완공을 보게 되여 이 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2006년 11월 4일”

 

그런데 이렇게 긴 안내문이 쉼표 하나 없이 마침표가 딱 하나인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글이란 될 수 있으면 짧고 간결해야만, 잘못된 문장이 나오지 않으며,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다는 것을 안내판 세운 사람들은 모르는 모양이다. 의풍포의 어원에 대해서 궁금증이 일었다. 나중에 이곳 마을에 살고있는 임정훈 선생에게 물어보니 의풍포 지명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단다.

 

“의풍포(義豊浦)는 백옥포리의 옛날 이름이다. 평창군에 살기 좋은 명당 마을이 12곳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곳이 의풍포 마을이었다. 이곳이 예전에는 모두 논이었고 농사가 아주 잘 되었다. 다른 곳에 흉년이 들어도 이곳 마을만은 풍년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마을 사람들이 흉년 다음 봄에 의풍포 마을에 와서 뿌릴 곡식 씨앗을 얻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의로울 義자와 풍년 豊자를 쓰고, 浦란 속사천과 흥정천의 물이 만나므로 물이 풍부한 곳을 의미한다.”

 

우리는 의풍교 다리를 지나 강 건너편 둑방길로 차를 타고 이동하였다. 속사천의 북쪽은 백옥포리이지만 남쪽은 재산리이다. 하천 둑방에 차를 주차하였다. 나는 차 트렁크에 있는 등산화를 꺼내 신고 배낭을 둘러메었다. 강 따라 걷는 길은 산을 오르는 등산과 달라서 스틱을 쓸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 “스틱은 그냥 놓고 가자”라고 내가 제안했다. 그러나 등산 경험이 많은 시인마뇽이 “길을 걷다가 혹시 사나운 개를 만나면 스틱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말해서 한 사람만 스틱을 가져가기로 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젊은이에게 필요한 속담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는 한번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매사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오전 10시 10분에 걷기를 시작했다. 오늘이 11월 11일이니 절기로 보면 늦가을이다. 가을 하늘이 쪽빛으로 파랬다. 오늘 같은 날에는 푸른 하늘이 배경이 되어 사진이 잘 나온다. 기온은 걷기에 좋을 정도로 적당하고 공기는 매우 상쾌했다. 밭에는 가을걷이가 끝난 곳이 대부분이었지만, 아직 배추나 무 등이 남아있는 곳이 더러 있었다.

 

들꽃들은 모두 다 시들어 사라졌다. 들풀의 잎과 줄기는 말라버려 초록색은 사라지고 칙칙한 갈색만이 남았다. 강을 따라 걸으니 계속해서 강물을 볼 수 있고, 소곤대는 물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거기에다가 좋은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으니 외롭지도 않고, 세상에 부러운 것 없는 행복한 시간이 계속된다.

 

강 따라 조금 내려가자 삼형제 장군 바위 조금 아래쪽으로 강가에 비슷하게 생긴 바위가 하나 서 있다. 마침 지나가는 노인을 붙잡고 “어디 사세요?”라고 물어보니 “저기 산다”라고 앞에 보이는 집을 가리킨다. 저 바위가 삼형제 장군 바위냐고 물으니, 노인은 자기들은 ‘노적바위’라고 부른단다. 바위 윗부분이 평평한 모습이 볏단을 쌓아놓은 노적가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나 보다.

 

 

길은 강과 멀어지면서 집이 몇 채 있는 왼쪽 마을로 구부러진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개소리가 요란하다. 길 양쪽에 개집이 있고 양쪽에서 개들이 사납게 짖어댄다. 다행히 개 목줄에 묶여 있어서 스틱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해도, 왠지 긴장된다. 나는 어렸을 때 개에게 종아리를 물린 적이 있어서 어른이 되어서도 항상 개가 무서웠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라는 속담을 생각하면서 개소리를 무시하고 그냥 지나갔다.

 

경사길을 조금 올라가니 중앙선이 그려져 있는 찻길이 나온다. 두 길이 만나는 지점 왼쪽에 근사한 펜션이 있다. ‘럭셔리별장펜션’이라고 쓰인 커다란 간판이 보인다. 고급 펜션인가보다. 뭔가 고급스럽고, 비싸고, 좋고, 명품이라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어려운 영어 단어를 가져다 붙이는 것이 요즘 유행이다. 세종대왕을 존경하고 한글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나는 이러한 유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언론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에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내 생각은 그렇다는 것이다.

 

큰길 따라 경사길을 조금 내려가니 평창강 시점 비석이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고, 비석의 왼쪽으로 커다란 기와집을 포함한 건물 3개가 눈에 들어온다. 이 건물은 한국전통음식문화체험관(다른 이름은 정강원)인데 고급 한정식집으로서 민박도 할 수 있다. 카카오맵에서는 이 식당이 ‘정강원 한옥호텔’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평창 사람들이 귀한 손님이 오면 이곳으로 데려와 고급 한정식을 대접하는 식당이다.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이면 올 수 있는 이 식당에 나는 여러 번 왔었다.

 

오늘 답사는 시간상으로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리(동산동교)를 건너 건물 안으로 들어가 구경을 하였다. 정원이 넓고 식당 건물 외에 숙소동과 한옥박물관까지 딸려있는 커다란 시설이다. 각종 장류를 보관하는 항아리들이 돌담 안으로 수백 개 놓여 있었다. 지난여름에 왔을 때는 여러 가지 예쁜 꽃들이 피었었는데, 지금은 늦가을이라서 꽃은 다 지고 정원은 쓸쓸하기만 했다. 다음에 시간 내서 다시 오기로 하고, 오늘은 한 바퀴 휘 들러보고 그냥 나왔다.

 

 

 

 

 

동산동교 다리를 다시 건너서 강의 왼쪽 길을 따라서 걸어갔다. 우리가 가는 길을 소개하는 커다란 안내판이 서 있었다. 우리가 오늘 걸을 길의 이름이 금당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안내판에는 14개의 민박집과 펜션들의 사진과 전화번호가 있었다. 금당길 왼쪽은 금당산이고 오른쪽으로는 평창강이 흐른다. 강가에는 갈대가 많이 보였지만, 이제는 다 시들어 스산한 느낌을 주었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갈대가 사각대는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금당길은 걷기 좋은 고즈넉한 길이었는데,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다는 점이 우리에게는 아쉽다면 아쉬웠다. 그렇지만 여기 사는 주민들은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다.

 

금당길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자 고가도로로 지나가는 KTX 기찻길이 나타났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느라고 만든 철도다. 최근에 평창군은 ‘평화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강조한다. 이전에는 ‘Happy 700 평창’을 홍보하였다. 평창군의 해발 고도가 평균 700m인데, 700m가 건강 측면에서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고도라는 것이다. 평창이 평화의 도시가 된 것은 2018년 동계올림픽 때에 북한팀이 평창에 왔기 때문이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화해의 물꼬가 트이고, 이어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남북간의 평화가 평창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런 연유로 평창은 평화의 도시가 된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평창은 세계 평화를 연구하고 비전을 제시하는데 이바지할 평화의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강원도와 평창군에서는 2019년 2월에 평창평화포럼이라는 기구를 만들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폴란드의 바웬사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초청하여 국제 평화를 논의하였다. 올해에는 지난 2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 동안 알펜시아에서 ‘2020 평창평화포럼 회의’를 성공리에 연 바 있다. 쉽게 말해서 평창군은 평화를 홍보 전략으로 채택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계속 길을 따라가자 왼쪽에 수많은 벌통이 보인다. 그렇지만 웅웅거리는 벌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지금쯤 벌들은 벌통 안에서 겨울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지리산에서 벌을 키우는 고등학교 동창생에게 물어보니, 벌들은 뱀이나 곰처럼 겨울잠을 쿨쿨 자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겨울이 되면 벌들은 벌통 안에서 움직임을 최대한 줄이고 서로 협동하여 축구공처럼 뭉쳐서 몸을 바짝 붙이고 몸을 떨면서 열을 발산하여 추위를 견딘다고 한다. 겨울철에 먹이로는 꽃꿀과 설탕농축액이 3:7 정도로 섞인 사양꿀을 조금씩 먹는다고 한다. 모든 식물과 동물은 각각 독특한 방법으로 추운 겨울에도 살아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