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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아라뱃길, 곡학아세와 혈세낭비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70]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리나라에는 지금 많은 국민이 잊고 있는 운하가 하나 있다. 인천 앞바다에서 김포시의 한강까지를 연결하는 길이 18km의 경인운하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예산낭비 사업이었지만, 이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지역 언론에서만 일부 보도가 되고 있을 뿐 대부분 언론은 보도하지 않는다. 주류 언론이 보도하지 않으니 일반 국민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있다.

 

 

경인운하는 굴포천 방수로 사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김포 일대의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하여 건설부에서는 방수로 사업을 1990년대에 진행하고 있었다. 경인운하 사업은 노태우 정부에서 시작되었다. 정부에서는 1995년에 경인운하를 민간투자대상사업으로 선정하고 1998년 3월에는 (주)경인운하가 사업시행자로 선정되어 실시협약까지 체결하였다. 김대중 정부에서 환경단체들이 경제성과 환경파괴 등을 이유로 경인운하 반대 운동을 펼쳤다. 2002년에 한국개발연구원에서 2차에 걸쳐 경인운하의 경제성을 분석한 결과 비용편익 비율(B/C 비율)이 0.82와 0.92로 나왔다. 경인운하는 경제성이 없다는 연구 결과다.

 

비용편익 비율은 대규모 사업의 계획 단계에서 실시하는 경제성 평가 지표이다. 사업이 완공되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편익(Benefit)과 투입하려는 비용(Cost)을 각각 금전으로 환산하여 비율을 계산한다. B/C 비율이 1을 넘으면 비용보다 편익이 크므로 그 사업은 경제성이 있다고 본다. 2003년 2월에 시작된 노무현 정부의 감사원에서는 경인운하의 경제성에 대한 재검토를 한 결과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었고, 경인 운하 사업은 중단되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중단된 경인운하 사업을 2008년 2월에 시작된 이명박 정부에서 재추진하였다. 2008년 11월 총리 주재 국가정책회의에서 경인운하를 ‘경인 아라뱃길’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바꾸고 사업 추진을 확정하였다. 공기업인 한국수자원공사가 사업을 직접 시행하는 방식으로 2009년에 경인운하 공사를 시작하였다.

 

경인운하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명박 정부는 경제성이 있다는 근거로서 2가지 보고서 결과를 인용하였다. 첫째는 2007년에 네델란드 용역회사인 DHV가 제시한 연구 결과이다. 이 연구에서는 경인운하 사업의 B/C비율이 1.76으로 나타나서, 경제성이 상당히 높다고 평가하였다.

 

두 번째 근거는 한국개발연구원에서 2008년 초에 제시한 연구결과인데 B/C 비율이 1.065로서 경제성 평가의 임계점인 1.0을 살짝(6.5%) 넘었다. 쉽게 설명하면 비용 1,000원을 들여서 편익이 1,065원 나오므로 경제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물류 전문가인 한신대학의 임석민 교수는 네델란드 용역회사의 연구 결과에 대해서 편익을 황당하게 부풀렸다고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DHV는 2011년 컨테이너 37만 TEU(필자 주: 표준 컨테이너의 단위로서 가로 길이가 20피트인 컨테이너 한 개가 1 TEU임), 바다모래 720만 톤, 철강재 66만 톤, 쓰레기 136만 톤, 자동차 4.5만 대, 여객 92만 명이 경인운하를 이용할 것이다”라고 소설을 쓰듯 멋대로 수치를 날조하였다. DHV가 경인운하를 미끼로 경부운하의 용역을 따내기 위해 아예 작정하고 사기 치듯이 수치를 부풀린 것이다. 이 교활한 더치(Dutch, 네덜란드 사람)들이 우리를 우롱하고 농락하고 있는데도, 외국인이라면 하늘처럼 맹신하는 어리석은 한국인들이 참으로 답답하고 한심스럽다.“

 

필자 역시 네덜란드 용역회사의 연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한다. 어느 날 환경영향평가학회 세미나 현장에서 미국인 교수(Charles Wolf)를 만나 경인운하의 경제성 문제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DHV 회사의 연구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그 미국인 교수는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대답하였다. “Don’t ask a barber if you need a haircut. (이발사에게 내가 머리를 깍을 필요가 있는지 묻지를 말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라고 하면 경제 분야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우리나라 최고를 자랑하는 두뇌집단이다. 흥미로운 것은 경인운하에 관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경제성 분석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경인운하가 ‘경제성이 없음(0.82~0.92)’이라고 결론을 냈는데,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경제성이 있음(1.065)’으로 결론이 바뀌었다. 정권이 바뀌자 경제성 분석 결과도 바뀌었다. 국책연구기관이 객관성이라는 측면에서 스스로 신뢰성을 떨어뜨렸다. 반성할 일이다.

 

KDI의 연구 결과에 대해 임석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더욱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나는 그동안 KDI에 경인운하의 문제점을 적시한 글을 몇 차례 보냈다. 그러나 그들이 보신과 영달을 위해 곡학아세로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실망과 분개가 너무도 크다. 그들로부터 이른바 학자적 양심과 소신을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였다.”

 

경인운하는 2009년에 착공되어 2년의 공사 기간과 6달의 시범운행을 거쳐 2012년 5월 25일 개통되었다. 정부에서는 경인운하가 개통되어 3조원 경제생산 유발효과가 있고 일자리 2만5,000개가 창출된다고 홍보했다.

 

 

경인운하의 길이는 18km, 폭은 80m, 수심 6.3m, 갑문은 2개가 건설되었다. 사업비는 모두 2조 6,759억원이 들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시범 기간 아라뱃길을 오간 화물선은 4척에 불과하였다. 수심이 6.3m로 낮아서 대형화물선은 운항하기 어렵고 겨울에는 물이 얼어서 사용할 수 없다. 개통식을 준비하던 국토해양부에서는 해운사에 요청하여 컨테이너부두에 텅빈 컨테이너를 야적하였다고 보도되었다.

(https://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340)

 

개통식은 서둘러서 했지만 운하로써 사용되지는 못하였다. 물류터미널 등 주변시설은 개통식 뒤 3년이 지나서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에야 완공되었다. 그런데 아라뱃길을 운하로 사용할 수 있을까?

 

경인운하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인천항에 들어온 선박에서 화물을 하역하여 전국 각 지역의 목적지까지 운반한다고 가정해보자. 현재는 선박에서 화물을 내려 트럭에 싣고 목적지까지 직접 운반하면 된다. 그러나 운하를 이용하면 매우 복잡해진다. 선박에서 화물을 하역하여 인천 터미널로 이동시킨 후에 바지선에 옮겨 싣는다. 바지선은 두 개의 갑문을 통과하여 김포터미널까지 18km 거리를 이동한 뒤에 다시 화물을 하역하여 트럭에 옮겨 싣고 목적지로 가게 된다. 처음부터 트럭으로 가면 20분이면 되는 거리를 운하를 이용하면 2시간이 걸리고, 화물을 바지선에 옮겨 싣고 내리는 비용이 더 드는데, 누가 운하를 이용할까?

 

경인운하에는 바지선 말고도 유람선을 운행했던 적이 있다. 현대해양레져(주)는 2012년에 3척의 유람선을 취항해 인천 옹진군 덕적도와 경인아라뱃길 그리고 서울 여의도를 오갔다. 그러다가 서울시는 생태계 훼손과 환경오염, 안전상 문제 등을 이유로 유람선의 한강 통과를 반대했고 결국 2년여 만에 유람선 운항이 중단됐다.

 

 

환경부는 아라뱃길 기능 개선을 논의하기 위한 공론화위원회를 2018년 10월 발족하고 29차례 논의를 벌여 2021년 2월에 다음과 같은 권고안을 내었다.

1) 배로 짐을 나르는 주운 기능은 야간에만 운영하고 실적이 낮으면 완전히 폐지한다.

2) 현재 4~5등급으로 악화한 수질을 2등급까지 개선한다.

3) 항만 시설을 여가용 문화·관광 시설로 전환한다.

 

공론화위원회가 이런 결론을 내린 이유는 아라뱃길이 애초 예상보다 물류와 여객 기능을 잘 수행하지 못하며, 갑문 때문에 물이 정체되면서 수질이 크게 악화하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론화위원회는 아라뱃길의 주운 기능을 폐지하고 관광시설로 전환하라는 권고안을 낸 것이다.

 

그런데 2021년 4월에 오세훈 시장이 당선되면서 아라뱃길에 다시 유람선을 띄우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오세훈 시장은 선거 과정에서 '제2의 한강 르네상스'(지천 르네상스)를 공약했다. 이 공약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등장했던 한강 르네상스 공약을 잇는 것으로, 유람선 운항을 재도입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인천시 계양구 일대 아라뱃길 현장을 방문하고, 인천시에 아라뱃길 유람선 운항을 다시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하였다. 유람선 업체 등과 함께 운항 재개를 위한 실무 협의도 진행했다. 인천시는 경인아라뱃길과 한강 구간 뱃길을 개통해 관광객 유입을 확대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목적으로 서울시의 계획을 찬성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사업을 추진했던 친MB 인사들이 국정 전면에 나서고 있다. 만일에 다가오는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선에 성공하면 그의 공약에 따라 한강과 아라뱃길을 연결하여 유람선을 운항하는 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경인운하는 원래 바지선을 운항하는 것을 목표로 2조 7,000억원의 국가예산을 투입하였다. 그러나 2012년 5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경인운하에서는 화물 519만 톤이 처리되어 당초 사업계획인 6,298만t의 8.2%밖에 처리하지 못했다.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21/05/512916/)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라뱃길은 "수조 원짜리 자전거 도로"라고 깎아내려서 불린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아라뱃길이 좋겠지만 필자는 아라뱃길을 보면 ‘곡학아세’와 ‘혈세낭비’라는 두 단어가 생각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