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달균 시인]
보나 마나 낙방거사
삼수 사수 몇 번짼가
추풍령
추풍낙엽
낙화암
지는 꽃잎
가을이 오기도 전에
우수수 낙엽진다
이놈아, 재수 없다 낙장에 낙마라니
과장(科場)에 들기도 전에 떨어질 낙(落) 자 웬 말이냐? 공부 못해 그리됐나 운이 없어 그리됐지. 낙방거사 자초지종을 어디 한번 말해볼까? 처음엔 뒤에 놈이 제발 제발 애원하여 보여주다 쫓겨났고, 두 번째는 큰 대(大)자에 떨어진 먹물, 개 견(犬) 자로 탈락했고, 세 번째는 분하고 억울하다 답안은 백 점인데 이름자 빠뜨려 낙방이라, 마지막 사연은 천기누설, 밝힐 수 없음이 안타깝다.
내 사주
대기만성이라
이번엔 문제없다
<해설>
우리 가여운 양반님 이번에도 낙방일까? 한양으로 모시고 갈 하인은 이미 알고 있다. 그 결과야 뻔한 것 아닌가. 기방동기들과 허구헌날 기생집이며 천렵이며 다니고 놀았는데, 과거는 무슨 놈의 과거인가. 어디 진사 생원은 양반님 찜 쪄 먹는 것이란 말인가. 올해가 몇 번째인지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올해도 보나 마나 낙방인데 어쩔 것인가? 하지만 이 양반님 결코 과거의 낙방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그 변명이 가관이다.
평시조에 사설을 혼용한 형태인데 두 번째 사설 부분에 방점을 찍은 시조다. 양반님 주워섬기는 말맛을 강조하였다. 원래 누구든 떨어진 이유는 있다.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
처음엔 답안을 잘 썼는데, 하도 뒤에 놈이 애원하여 슬쩍 보여주었다가 커닝이 탄로 나 쫓겨났고, 두 번째는 큰 대(大)자를 쓴 것인데, 아뿔싸 하필 먹물이 그 위에 떨어져 개 견(犬) 자가 되어 탈락했고, 세 번째는 답안은 족히 백 점인데 이름을 쓰지 않아 낙방했도다. 실력은 상수인데 지지리도 운이 없었다는 말씀. 네 번째는 굳이 밝힐 이유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