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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선재길

오대천 따라 걷기 2-1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2년 5월 16일 월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김연진 김종화 박인기 부명숙 안승열 오종실 이규석 원영환 최경아 최돈형 홍종배 모두 12명

<답사기 작성일> 2022년 5월 29일

 

이날 코스는 아름다운 길로 널리 알려진 선재길이다. ‘선재(善財)길’은 월정사에서부터 오대천을 따라서 상원사에 이르는 9km의 산책로다. 선재길을 완주하려면 3~4 시간이 걸리지만, 표고 차이가 200m 정도로 경사가 완만해서 남녀노소 누구라도 산책하듯이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선재길은 월정사가 2004년부터 걷기 행사를 하면서 옛길을 복원하기 시작하였는데, 2013년 10월에 전 구간을 개통하였다. 예전에는 스님과 신도들이 현재의 자동차 길을 따라 월정사에서부터 상원사까지 걸어 다녔다고 한다.

 

 

 

선재길은 불교 경전인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선재동자(善財童子)라는 소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화엄경은 불교의 팔만대장경 가운데 가장 방대하며 특이한 경전이다. 한자로 된 화엄경은 80권본을 기준으로 할 때 약 58만 자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경전은 부처님의 설법을 모은 것인데, 화엄경은 부처님의 설법에 대해 다른 보살들이 설한 것을 모은 경전이다.

 

선재동자는 화엄경의 마지막 부분인 입법계품에 등장하는 구도자 이름이다. 그는 53명의 선지식(善知識, 스승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을 차례로 찾아 천하를 돌아다니며 도를 구한다. 그는 선지식을 찾아 단순히 말로써 도를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장 잘하는 행동을 몸소 실천하여 깨달음을 얻게 되면 다른 선지식을 찾아 떠나는 방식으로 도를 구한다.

 

그가 만난 선지식 가운데는 보살만이 아니고 비구, 비구니, 소년, 소녀, 의사, 뱃사공, 상인, 기생 등도 포함되어 있다. 그의 구도 여행에서 큰 깨달음을 주시는 분은 52번째로 만난 미륵보살이다. 미륵보살은 선재동자의 도를 구하는 열정이 “마음에 싫증을 내지 않고 머리에 붙은 불을 끄는 것과 같다”라고 칭찬하였다. 선재동자는 마지막으로 53번째 보현보살 법문을 듣고 보현행의 서원을 올리며 구도 여행을 끝낸다. 화엄경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이 법을 듣고 환희하며 마음으로 믿어 의심하는 일이 없는 사람은 위 없는 도를 빨리 성취하여 모든 부처님과 동등해지네.”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님과 동등해진다는 불교 사상은 절대자를 인정하는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와는 차이가 있다.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는 인간 중심의 매우 평등한 종교라고 볼 수 있다.

 

진부역에서 아침 10시 45분에 만난 일행 12명은 진부 영양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상원사로 이동하였다. 월정사 조금 위에서부터 상원사에 이르는 구간은 비포장길로서 자동차를 운전해도 시속 30km를 넘기기가 어렵다. 상원사 주차장은 해발 850m의 고지대에 있다.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 당시 적군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월정사를 불태운 국군이 상원사까지 불태우려고 올라왔을 때, 주지인 한암선사는 불상 앞에 정좌하고 불을 지르라고 소리쳤다. 스님의 일갈에 압도당한 장교(중위라고 알려졌을 뿐 누구인지는 모름)는 문짝만 몇 개 뜯어 마당에서 불태우고 상원사를 보전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평창군의 기록을 보면 선재길 주변에는 1960년대까지 곳곳에 화전민 360여 가구가 살았다. 그러다가 1968년 울진ㆍ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계기로 정부 방침에 따라 월정사 아래로 모두 이주했다고 한다. 현재는 월정사 위로는 민가가 없다.

 

1975년에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에는 평창군에서 두메 중의 두메인 오대산 지역도 교통이 편리해졌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하루 만에 오대산 비로봉까지 등산하고 다시 돌아갈 수가 있다. 시인마뇽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 오대산을 등산하기 위하여 서울에서 월정사까지 오려면 한나절이 족히 걸렸다고 한다.

 

시인마뇽이 산행기 기록을 뒤져 나에게 카톡으로 알려준 내용을 소개한다. 그는 오대산 비로봉(고도 1565m)을 등산하기 위하여 1972년 10월 21일 서울의 마장동 터미널에서 아침 8시 50분에 출발하였다. 시외버스를 타고 양평, 문막, 원주, 안흥, 대화를 거쳐서 진부에 도착한 시간이 낮 3시 45분이니 서울에서 진부까지 무려 7시간이 걸렸다. 진부에서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월정사까지 가는데 추가로 1시간이 걸렸다. 그때는 지금처럼 숙박 시설이 없던 시절이어서 월정사 계곡 안쪽에 있는 민박집에서 하루 자고 이튿날에 등산을 시작했다고 한다. 계산해 보니 지금부터 50년 전의 옛날이야기다.

 

우리는 낮 1시 10분에 상원사 주차장을 출발하였다. 조금 내려가다가 왼쪽으로 하천을 지나 선재길 소로로 접어들자 숲길이 이어졌다. 두 주 전에 견줘 나뭇잎은 이제 연두색을 지나 초록색이 되었다. 연두색 어린잎은 점점 자라서 이제는 모두 초록색 성년잎이 되었다. 활엽수의 넓은 새잎들은 겨울을 견뎌낸 침엽수의 뾰족한 잎들과 확연히 구별된다. 새로 돋아난 활엽수 잎이 더 싱싱하고 더 푸르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적당할까? 내 눈에는, 활엽수의 새잎이 침엽수의 낡은 잎보다 보기에 더 좋다.

 

이날 날씨는 완연한 봄 날씨이다. 서울에서는 이미 벚꽃은 물론 철쭉까지 다 졌다는데, 여기는 이제야 철쭉이 한창이다. 하늘은 푸르고 오대천 물소리가 시원스럽다.

 

 

 

 

선재길은 내가 지금까지 7~8번은 걸었을 것이다. 내가 봉평으로 귀촌하기 전은 물론 2015년에 귀촌한 이후에도 석주와 여러 번 선재길을 걸었다. 코로나 때문에 얼마동안 오지 못했는데, 약 3년 만에 선재길에 다시 와 보니 군데군데 길을 넓히고 정비하여 걷기가 훨씬 편해졌다. 폭우가 내려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우회로도 만들어 놓았다.

 

 

 

 

선재길의 특징은 9km 전 구간을 물길 따라 걷는다는 점이다. 다리로 몇 차례 하천을 건너기는 해도 길은 하천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공기는 깨끗하고 상쾌하다. 숨을 들이쉬면 허파가 깨끗해지는 느낌이 든다. 녹색을 바라보면 눈은 저절로 편안해진다. 곳곳에 피어있는 봄꽃들은 자세히 보지 않아도 예쁘다. 친구와 소곤소곤 대화하며 걸으니 지루하지 않다.

 

선재길을 걸으면 끊임없이 물소리를 들을 수가 있어서 좋다. 도시의 자동차 소음 대신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전환되고 몸과 마음이 치유됨을 느낄 수 있다. 물소리를 배경으로 새 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나뭇잎 살랑거리는 소리까지 어우러진다면 그것은 선재길이 베푸는 소리 보시다.

 

선재길을 걷고 나면 사람은 어떻게 변할까? 선재길 입구에 있는 <선재길 의미>라는 제목의 선간판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선재에는 ‘착한 사람’이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재길을 걷는 것은, 이 길을 통해서 세상사의 고뇌와 시름을 풀어 버리고 새로운 행복으로 나아가는 것과 더불어 서로에게 착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선재길을 걸으며 우리는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목적을 찾는 깨어있는 사람으로 거듭나 문수보살의 지혜와 만나게 될 것입니다.”

 

선재길을 걸으면 몸과 마음이 치유되어 착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어떻게 그런 변화가 가능할까? 말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선재길로 와서 걸어 보라!”라고 말할 수밖에. 불교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해서 진리를 말로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체험하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