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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수류산방 복원, 청빈한 삶 보여주면

오대천 따라 걷기 3-3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제3구간 답사 뒤인 2022년 6월 5일 오후에 나는 혼자서 간평리의 집을 방문하였다. 막상 찾아가 보니 우리가 5월 30일 걸었던 코스에서 불과 10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철망으로 만든 대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고 안채가 보였다. 시골집인데도 울타리가 있었다. 담을 왼쪽으로 돌아가니 철망 너머로 흙집이 보였다. 답사 전에 미리 갔었더라면 일행을 안내하여 그곳을 찾아가 보았을 터인데, 아쉬웠다.

 

 

 

그런데 내가 사진으로 본 수류산방은 ‘화전민이 살다 버리고 떠난 오두막집’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마 전에 평창에 살면서 법정 스님을 존경한다는 채 아무개 씨를 만났는데, 그분과 대화 중에 오두막집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법정스님이 송광사 불일암을 떠나 오대산으로 왔을 때 처음에는 수류산방보다 더 위쪽에 있는 오두막집에서 잠시 살다가 수류산방으로, 말하자면 이사를 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직접 오두막집에 가보았다고 한다. 류시화 시인이 법정스님의 말씀을 엮어서 펴낸 《산에는 꽃이 피네》 책에 오두막집 사진이 나온다고 한다. 그분은 오두막집 사진을 내 손말틀(휴대폰)로 보내 주었다.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불일암을 떠난 스님은 오대산 월정천 상류에 있는, 화전민이 살다 떠난 오두막집을 고쳐서 살기 시작했다. 오두막집에는 전기, 수도도 없고 심지어는 화장실도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불자의 보시로 그 아래 수류산방으로 내려와서 살면서 재래식 화장실을 스스로 만들었다. 개울물을 길어다가 밥을 지었다.

 

 

겨울에는 개울물이 얼기 때문에 수류산방에서 지내기가 너무 불편하므로 간평리에 있는 흙집에 내려와 살았다. 법정스님은 오대산에서 19년 동안(1992~2010) 살다가 78살에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법정스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무소유는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나는 법정스님의 다른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법정스님에 의하면 ‘하나가 필요한데 두 개를 가지려고 하는 것이 욕심’이다. 그렇다. 꼭 필요한 하나만으로 만족하는 삶이 환경주의자들이 이상적이라고 주장하는 ‘단순한 삶’이다. 돈이 없어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자지만 자발적으로 단순한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우리나라의 가장 큰 사회문제인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고, 지구온난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답사기를 쓰면서 문득 아래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알기로 탄허스님이나 성철스님은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 그러나 수많은 독자에게 무소유의 자유와 충만함을 가르쳐 주신 법정스님의 흔적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법정스님은 평창에 오셔서 무려 19년 동안 살았다. 그러므로 평창군에서 법정스님이 살았던 수류산방과 일월암을 복원하여 법정스님의 청빈한 삶의 현장을 후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좋지 않을까? 누군가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발전시키기를 기대해본다.

 

우리는 오대천을 따라 거의 두 시간을 걸었다. 아카시아 향기가 바람을 타고 풍겨온다. 쉬었다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아주 튼튼하게 만든 징검다리를 건너 오대천 오른쪽 언덕에 있는 정자에 3시에 도착해서 쉬었다.

 


 

 

여럿이 준비한 간식을 먹으면서 대화와 웃음이 계속되었다. 이규성 교수가 가져온 좋은 와인 한 병을 나누어 마셨다. 시간이 흐르면서 화려한 봄날이 과거 속으로 사라진다. 내가 해당에게 부채를 건네면서 판소리 사철가를 신청했다. 해당이 사철가를 멋들어지게 불렀다. 사철가의 결론은 ‘놀자’이다. 평생을 열심히 일한 후에 은퇴한 사람들이 할 일은 ‘잘 노는 일’이다.

 

나머지 벗님네들

서로 모여 앉아서

한 잔 더 먹소 그만 먹게

허여가면서

거드렁 거리고 놀아 보세

 

 

낮 3시 25분에 정자를 출발하였다. 이제부터는 오대천의 오른쪽 언덕을 걷는다. 오대천 건너편으로는 켄싱턴 호텔이 보인다. 이 호텔은 넓은 정원이 3개나 딸려 있고 잔디밭과 수영장 캠핑장 등 여러 가지 위락시설이 잘 갖춰진 고급 휴양시설로 서울의 부자들이 여름에 아이들을 데리고 즐겨 찾는 호텔이다.

 

 

계속 오대천 따라 걷자 한적한 산길로 이어지더니 인부들이 길을 막고서 도로공사를 한다. 작업하는 인부가 제일 앞서 걷는 나에게 돌아가라고 말한다. 내가 대답했다. “우리는 돌아가지 않고 하천으로 내려가 돌아서 가겠다.” 돌아서 가는 구간이 약간 험하기는 해도 모두 무사히 통과했다.

 

산길이 끝나면서 오대천 오른쪽 언덕의 둑길로 돌아왔다. 오대천 양쪽으로 넓은 밭이 펼쳐져 있다. 진부(珍富)에는 밭이 많아서 진짜부자(진부)들이 많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우리는 간평교를 조금 더 지나서 둑길이 막히는 곳까지 걸었다. 석영과 정선댁은 사진을 찍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10분 정도 뒤쳐졌다가 간평교에서 합류했다.

 

 

우리는 저녁 5시 무렵 답사를 마쳤다. 이날 월정사 주차장에서 간평교 하류까지 9.6km 구간을 4시간 10분 동안 걸었다. 답사를 마치고 모두 봉평 우리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했다. 은곡거사도 식사에 참여했다.

 

<답사후기 1>

 

석영이 ‘답사를 끝낸 후에’라는 제목으로 답사 소감을 써서 카톡방에 올렸다.

 

「오대천에서 바람소리 물소리」

 

월정사 금강문에서 간평리 다리까지

오대산 오대천 물을 끼고 걷습니다.

낮은 구름이 오월을 포근히 안습니다.

오월 안에서 걷는 나도 포근히 안깁니다.

 

곧은 전나무 행렬들 장려하여

화엄의 우주에 바름을 진설하는 사이

야생의 들꽃들 하늘에서 내려온 별인 양

내 걷는 길 위에 총총합니다.

 

오대천 물소리에

눈을 씻으며 걷습니다.

산 능선 오르고 내리는 바람 소리에

귀를 씻으며 걷습니다.

 

눈을 씻고 귀를 씻는다는 나의 무의식은

청년의 시절, 어떤 인문의 경전에서 발원하였을까.

그리하여 무슨 속죄 의식인 양 흘러

이렇듯 나를 서늘하게 검열하며 스며드는지,

 

산 깊고, 물 맑은 곳에 들어

호젓하기만 하면

그 어떤 정신이 따라붙습니다.

 

아! 함께 걷는 동무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여기 어디쯤서 증발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같이 걸어서 세상 이야기 이어주는

그들이 동행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기 지금 걷는 길 버리고

나를 기꺼이 길 밖의 길로 추방했을 것입니다.

 

산과 물과 길이

내 마음 안으로 들어와

내 투명한 의지들이

어디론가 가 버렸습니다.

돌아갈 집을 잃어버렸습니다.

 

<답사후기 2>

 

나는 지난 2022년 7월 28일(목) 시간을 내어 법정스님이 살던 수류산방을 찾아가 보았다. 오대산관리사무소가 있는 삼거리에서 진고개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중간쯤에 오른쪽으로 개천을 건너가는 낮은 세월교가 나온다. 차는 길가 공터에 세워두고 걸어가면 된다. 세월교는 마침 하천물이 적어서 건너갈 수 있었다. 고즈넉한 산길을 따라 걸으면 오른쪽에 넓은 밭이 나타난다.

 

세월교에서부터 15분쯤 걸으면 다시 개천이 나타난다. 개천이 나타나는 지점 왼편에 자물쇠로 잠가둔 철문이 보이고 철문에는 경비장치인 SECOM이 설치되어 있다는 표시판이 붙어있다. 돌담 앞에는 평창경찰서장의 경고문이 세워져 있는데, 사유지이므로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위반시 고발조치한다고 쓰여 있다. 아마도 어딘가에 CCTV를 달아놓았을 것이다. 나는 수류산방으로 들어가는 대문의 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