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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아니라 ‘배움’이다!

서양말 ‘에듀케이션(education)’은 우리말로 ‘배움’이라 해야
김두루한 배움이야기 2

[우리문화신문=김두루한 참배움연구소장]  서양말 ‘에듀케이션(education)’을 한국말로 뭐라 옮기면 좋을까? 대한민국 교육부에서 보듯이 ‘敎育’을 '교육'이라 읽고 쓰는데 이 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흔히 맹자의 '得天下永才而敎育之(천하 영재를 모아 가르치고 기른다)'에서 유래했다지만 과연 그럴까? 일본은 오쿠보 도시미치, 후쿠자와 유키치, 모리 아리노리 세 사람이 ‘education’을 ‘敎育’으로 뒤쳤다.(번역)

 

모리 아리노리(森有禮-초대 일본 문부대신)가 활약한 메이로쿠사(明六社, 메이지 시대 초기에 설립된 일본 최초의 근대적 계몽 학술단체)에서 한 일이다. ‘교화’(敎化)를 내세운 오쿠보와 ‘발육’(發育)을 말한 후쿠자와 말을 듣고서 모리가 교화와 발육에서 한 자씩을 따 와 ‘교육(敎育)’이라 제안한 것이다.

 

 

일본인들이 새로 만든 ‘교육’은 조선에서 썼던 ‘학부(學部)’의 ‘학’과 견주어 볼 수 있다. 조선은 6부 가운데 하나였던 ‘예조(禮曹)’를 학부라 바꾸고 대한제국(1897~1910) ‘학부령’에서 보듯이 ‘배움(학)’을 써 왔으나 누에가 뽕을 먹듯 ‘학(부)’이란 말 대신 일본말 ‘교육’이 똬리를 틀었다. 교육강령이라고도 부르는 조서(1895)에서 “교육은 실로 나라를 보존하는 근본이다.” 등으로 쓰였고 통감부 한국교육개량안(1905)이나 조선총독부 조선교육령(1911)으로 널리 퍼져 21세기인 오늘까지도 ‘배움부’가 아닌 ‘교육부’처럼 아무 생각 없이 널리 써 온 것이다. 스스로 묻고 따짐을 거치지 않았다. 아직도 우리는 그저 ‘敎育(쿄오이쿠)’이란 일본말을 빌려 쓰는 셈이다. 왜 ‘에듀케이션(education)’을 한국말로 뒤쳐 쓰지 않는가?

 

 

대한민국은 ‘교육’과 ‘학습’에 갇힌 시험 공화국, 생각하는 배움은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왜 교육/학습사회에 머물러 있을까? 일본제국주의자들이 학교교육을 펼친 뒤 온 겨레는 20세기 전반기 빼앗긴 나라 황국신민(국민)학교 교실에서 ‘교육/학습’을 해야 했고 ‘교육과정’은 ‘조선교육령’(1911)에서 보듯이 애초부터 겨레얼(민족정신)을 없애려 했다. ‘국ㆍ검정 교과서’와 ‘닫힌 물음’의 ‘한 줄 세우기’ 경쟁시험으로 ‘나 세우기’ 배움을 누리지 못하고 놓쳤다.

 

그런 탓으로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누구 할 것 없이 ‘공정성’과 ‘객관성’이란 ‘줄세우기’ 주술에 얽매인 채 ‘각자도생’으로 의대, N수생, 일타강사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대한민국이 ‘나라다운 나라’가 되는 바탕엔 집안, 마을, 학교, 나라에서 ‘교육’을 벗어나 ‘배움’을 새롭게 일으킬 때다. 온 겨레가 ‘열린 물음’을 하게 도우며 생각하는 배움을 제대로 누릴 때다.

 

 

공부에는 가르침받기(교육), 익힘(학습)과 함께 배움(깨침)이 있다

 

공부에는 교육, 학습, 배움의 여러 차원이 있다. ‘교육’이 정해진 답을 구하는 것이라면 ‘학습, 배움’은 다시 닫힌 물음의 학습과 열린 물음의 배움으로 가를 수 있다. ‘닫힌 물음’의 답은 ‘책 안’에서 ‘학습’하여 답하고 열린 물음은 스스로 ‘생각해야’ 답할 수 있고 ‘깨침’으로 이어진다. 학교에 들어선 1학년 새내기가 학교 수업에서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학교에 들어선 새내기는 두 가지 물음 방식을 배워야

 

20세기 대한민국에서는 대부분 학교 다닐 때나 시험공부 할 때 ‘배움’은 없었다, 학생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받거나 익히는 것은 (피)교육/학습인데 ‘책 안’에서 답을 외어서 그대로 답하는 ‘교육’이나 답을 찾아 골라내는 ‘학습’에 머물렀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교실에선 두 가지 묻기(질문) 방식을 배운다. ‘닫힌 물음’과 ‘열린 물음’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은 ‘교육받기’는 물론 ‘닫힌 물음’의 학습에서 벗어나 ‘열린 물음’의 ‘배움’에 힘써야 한다. 생각하면서 ‘스스로 묻고 함께 새 답 찾기’를 즐길 때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에 따라 만들어진 국검정 ‘교과서’를 교사가 가르치고 학생이 익히는 과정이었다. 학생으로선 줄 세우기 경쟁시험을 대비하며 마지못해 학습하고 주어진 물음의 답을 고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열린 물음의 배움은 스스로 생각해서 ‘답’을 찾아야 한다. 삶을 누리며 그때그때 새롭게 맞닥뜨리는 문제를 풀고자 끊임없이 생각하고 새 답을 찾게 된다. 저마다 관심 있고 알고 싶은 것에 대해 호기심을 바탕으로 스스로 열린 질문을 하고 함께 새 답을 찾으며 서로 배움을 나누게 된다.

 

 

오늘날 21세기 대한민국도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맞닥뜨리고 있다. 이미 인공지능 수다쟁이(챗GPT)가 일상 말글살이를 좌우하면서 과제도 하고 글쓰기도 대신해주는 것으로 아예 판이 바뀌었다. 우리는 ‘주어진 물음’에 정해진 답을 강요하거나 ‘책 안’에서 답을 찾는 것에만 머물 순 없다. 학생이 학교에서 스스로 묻고 답을 찾아내는 활동인 배움을 일으켜 살맛 나는 배움을 즐기고 누려야 한다.

 

 

남이 한 말을 생각 없이 따라 하면 교육 대상인 종이 될 뿐이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어느 고등학생(채현국, 효암학원 전 이사장)이 대학에 들어가며 철학과로 간 이야기이다. 국문과나 독문과 같은 곳으로 가면 ‘각본’ 쓰는 쪽으로 갈 것 같아서 ‘생각하기’를 다룬다는 철학과로 갔단다. 하지만 한 학기 내내 교수들이 “누가 뭐라고 했다.”, “누구는 뭐라고 했다.”라며 가르치는(=전달하는) 것에 마침내 실망했다. “이게 무슨 생각하기일까? 전부 기억한 거 가지고, 심지어 답까지 외워서는 그걸 아는 거라고 한다니, 기억된 것을 아는 것이 ‘철학’인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삶을 누리면서 우리는 새로 관계를 맺고 서로 배움을 나누게 된다. 모르던 남남이 말하고 들으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은 거의 날마다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내 생각’이라고 알고, ‘내 말’이라고 생각하고 살지만, 과연 그럴까? 사실은 남들이 훈련시키고 길들인 대로 자칫 따라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쓰는 말을 살펴보자. ‘내가 만든 말’이 있던가? ‘내 생각’은 있었던가? ‘남’이 왜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지를 아는 것은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매우 중요하다. 나보다 힘이 있고 나를 지배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남이 만든 말로 우리가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남이 한 말을 따라 쓰기만 하면 ‘나’는 교육 대상으로 종이 될 뿐 생각하는 배움임자(주권자)로 설 수가 없을 것이다.

 

 

배움임자로 살맛 나는 배움을 누리며 참삶을 가꾸자

 

정녕 아는 것이 힘일까? 알고 해낼 수 있어야 힘이다. 왜 알고도 행하지 않을까? 스스로 묻고 따져서 깨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에게 전달받아 아는 것만으로 그친다. 제 판단을 스스로 남에게 맡기기 때문이다. ‘교육을 받을 권리’(헌법 제31조 1항)가 있다지만 실상은 한 줄 세우기 교육/학습사회이다. 더욱이 시험능력주의로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은 한가롭게 ‘입시 타령’을 하며 말 뿐에 그친다. 살맛 나는 배움을 누리는 사회를 바라는가? 그러면 이제 ‘배움 누릴 권리’로 바꿔내자!

 

21세기도 이미 20년 남짓 흘렀다. 학생을 비롯해 겨레 모두에게 순응을 강요하며 참다운 힘 기르기를 방해하는 수능시험은 참다운 힘을 기르게 돕는가?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에 이어 ”윗글에서 말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같은 주어진 물음에 고르기로 답하는 ‘교육’이나 ‘학습’에 언제까지 갇혀야 할까?

 

어느 원로 철학자는 “수능으로 한 줄을 세우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한뼘글(칼럼)을 썼다. 하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를 미룬 듯 수능을 어떻게 없앨지는 글에서 빠져 있어 실망스러웠다. 정작 그 책임을 맡아 실행할 자리에 있는 사람도 “나도 수능 폐지론자!”란 말을 하며 ‘교사 타령’만 하니 딱한 일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바란다면 나부터 ‘배움임자’로 나서자! ‘닫힌 물음’의 가짜수능을 없애자. 배움임자(주권자)라면 스스로 묻고 따져 깨친 것을 발표하고 토론해야 하지 않겠는가? ‘배움’이야말로 참삶을 가꾸는 길일진대 ‘배움혁명’으로 교육/학습사회를 배움사회로 판갈이 하자! 온겨레가 ‘열린 물음’으로 살맛 나는 배움을 누리는 ‘배움나라’를 이룩하자!

 

 

< 글쓴이 김두루한 소장>

 

참배움연구소>에서 참배움과 온배움, 늘배움의 배움학을 함께 갈닦는다. 《배움혁명》(2020), 《누리자!배움!》(2022)에 이어 《배움사회》(2023)를 펴냈으며 헌법 제31조 ‘교육받을 권리’를 ‘배움 누릴 권리’로 바꾸는 배움판갈이(배움혁명)로 대한민국을 혁신하고자 한다. 교육/학습사회 체제를 벗어나 ‘배움사회’ 체제를 이루어 참삶누림을 돕는 배움길 찾기에 힘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