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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쏟아지는 예수원서 천천히 걸었다

이뭐꼬의 구도이야기 5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단순 소박한 삶. 이러한 삶이 내가 환경을 공부하면서 결론 내린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다. 하나뿐인 지구에서 70억 인류가 다 같이 행복하기 위해서 따라야 할 삶의 모습이다. 종교적으로도 가장 바람직한 삶의 모습은 한경직 목사님과 법정 스님이 보여 주었듯이 단순 소박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인도의 간디 역시 단순 소박한 삶을 보여 주었다. 근래에 한비야라는 야무진 한국 여성이 세계의 두메를 여행하면서 쓴 4권의 여행기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는데, 한비야가 여러 나라를 돌아본 뒤에 내린 결론도 ‘단순한 생활이 행복하다’라는 것이어서 내심으로 흐뭇한 적이 있다.

 

정오가 되어 종이 울려서 삼종(三鐘)시간을 알렸다. 삼종이란 천주교 용어인데, 하루 세 번 종을 치면 종소리를 듣고서 교인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기도문을 외우며 기도를 한다. 그런데 예수원에서는 기도문을 외는 대신 침묵으로 삼종 기도를 한다. 이것은 매우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이슬람교도들이 그들의 신앙을 철저하게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아마도 하루에 다섯 번 메카를 향해 자리를 깔고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제도 때문일 것이다. 이슬람의 이러한 전통은 텔레비전을 통해 전 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

 

점심식사 뒤에도 작업이 계속되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예수원 방문객 가운데서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은 것 같다. 아,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구나. 이제는 모임에 갔을 때 연장자로서 상석을 양보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내 마음은 아직도 청춘이고 내 심장은 아직도 펄떡거리는데 연장자 취급을 받다니! 연장자라는 사실은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다.

 

젊은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면 연장자와 같이 있으면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길 것이다. 연장자라는 단어는 답답함과 통하며 속된 말로 표현하면 ‘꼰대’와도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젊은 목사님도 나와 함께 작업하는 것이 불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모처럼 주제를 파악하고서 오후 작업에는 참여하지 않고 예수원 곳곳을 혼자서 둘러보았다.

 

한쪽에 차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조그마한 공간에 간단한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다. 차나 커피는 무료이고, 자기가 직접 타 먹으면 되었다. 한쪽 구석에는 기념품과 책을 파는 공간이 있었다. 기념품은 수공예품이 많았다. 예수원에서 펴낸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무로 만든 십자가, 기도 의자, 복음성가 테이프, 그리고 그림들이 있었다. 그림은 모두 대천덕 신부님의 부인인 사모님이 직접 그린 것이라고 한다.

 

마침 차방에 어떤 중년의 남자가 있었는데, 자기는 예수원에 여러 번 왔다고 한다. 그에게 예수원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예수원에 텔레비전은 한 대도 없다고 했다. 신문은 하루 뒤에 배달되고,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 누리집은 현재 작업 중이라고 한다, 예수원 방문은 무료라고 하는데 공동체 식구들은 어떻게 먹고사느냐고 물어보니, 예수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소목장이 있어서 목축을 한단다.

 

또한 방문객들이 떠나면서 자기가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되면 헌금을 하기도 하고, 기념품을 사 가는 사람도 있고, 후원회가 있어서 후원금도 들어오고, 하여튼 예수원이 창립되고서 굶지는 않았는데, 그것이 다 기적이고 하느님의 돌보심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느님이 돌보아 주신다면 30여 명 공동체 식구들이 먹고사는 문제야 무엇이 어려울까?

 

차방을 나와 독서실을 방문하였다. 조용한 공간에 여러 가지 신앙 서적, 종교 서적, 명상 서적들이 책꽂이에 꽂혀 있고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신간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도서 구입비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독서실을 나와 주변을 산책하였다. 곳곳에 채소밭이 있고, 한 구석에 쓰레기를 태우는 간이 소각시설도 보였다. 분리수거한 쓰레기를 마대에 넣어 쌓아둔 곳도 둘러보았다. 개울을 건너니 앞산으로 향한 호젓한 등산로가 나타났다.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였다.

 

저녁식사를 하는데 안내자가 금요일이기 때문에 각자 숙소 별로 구역 예배를 드리면 된다고 알려준다. 마침 광주에서 온 젊은 목사님이 옆에 있었는데, 나더러 청년부 구역 예배에 참석하라고 권유했다. 청년들과 독서실에 모여 구역 예배를 드렸다. 청년들은 솔직하게 자기들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여러 가지 사례는 다르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결심한 일이 마음 먹은 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공부가 그렇고, 신앙생활이 그렇고, 부모님과의 관계가 그렇고, 여자 친구와의 관계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마음을 굳게 먹고 결심은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나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겪는 어려움이 아닐까? 청년뿐만 아니라 노인들도 역시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탄할 것이다. 기독교인은 성령의 도움을 요청하지만, 설령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도 정도의 문제이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안타까움은 여전할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을 근사하게 표현하면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 일찍이 플라톤은 “자기를 이기는 일이 가장 큰 승리이다”라고 갈파하였다.

 

예수원에서는 특별히 침묵을 강조하고 있었다. 소침묵 시간인 밤 9시부터 10시까지에는 작은 목소리로 필요한 말만 할 수 있고, 대침묵 시간인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예배 전까지에는 온전한 침묵 가운데 안식하거나 하느님과만 대화하는 시간으로 규정되어 있다. 점심식사 직후 낮 1시부터 2시까지는 개인 대도(기도)를 위한 침묵 시간으로 지키고 있다. 예수원에서는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행해지는 통성 기도보다는 침묵의 기도를 강조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의 일상생활을 잘 살펴보면 끊임없이 자기가 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는 과정이 계속된다. 말을 하거나 듣지 않을 때 현대인은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는 등 어쨌든,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말도 하지 말고, 고요히 침묵을 지키라고 하면 처음에는 매우 어색하다. 왠지 불안하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고,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 뒤지는 것 같고 등등 아무튼 현대인은 침묵에 익숙하지 못하다.

 

나에게도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묵한다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러나 이왕 예수원에 들어왔으니 시키는 대로 침묵 속에서 기도하면서 나 자신을 찾아보기로 했다.

 

 

구역 예배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어둠 속에서 예수원을 거닐며 조용히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었다. 나란 무엇인가? 왜 나는 우울증에 빠졌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정말로 하느님을 믿는 기독교인인가? 사람이 따라야 할 참된 길은 무엇인가?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별이 쏟아지는 여름밤에 예수원에서 천천히 걸었다. 침묵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두어 시간을 보냈다. 깨달음은 순간적으로 온다는데... 밤이 깊어만 갔다. 아아, 안타깝게도 해답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숙소로 살짝 들어와서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