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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부처’라 불린 신라의 불상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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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주 남산에 가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걸친 다양한 불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남산에 본격적으로 불상이 조성된 것은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 이후입니다. 이 가운데에서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이른 시기인 삼국시대에 조성된 불상입니다.

 

 

1924년 남산 북쪽, 장창곡 가까이 있는 석실(石室)에서 불상 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불상 양쪽에 나란히 있었던 두 보살상은 이미 산 아래 민가로 옮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불상과 두 보살상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 분관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 불교조각실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불상에 담긴 이야기

 

장창곡 삼존불상은 《삼국유사》 「생의사석미륵(生義寺石彌勒)」에 등장하는 생의사 미륵세존으로 추정됩니다. 644년(선덕여왕 13) 생의 스님이 꿈속에 찾아온 미륵을 남산 골짜기 땅속에서 찾은 뒤, 삼화령 위에 석조미륵상을 봉안하고 그 자리에 생의사를 창건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 미륵불상은 《삼국유사》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景德王忠談師表訓大德)」에서 충담 스님이 해마다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를 공양했던 남산 삼화령 미륵삼존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장창곡 삼존불상은 이 미륵불상과 존격(尊格)이 동일하고 조성 시기도 비슷해 같은 불상으로 판단됩니다. 이러한 기록을 근거로 장창곡 삼존불상을 ‘삼화령 미륵불상’이라고도 하며, 조성 시기를 644년 무렵으로 추정합니다. 이렇듯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불상의 조성 시기와 발원자, 처음 봉안 위치 등을 확인할 수 있어 그 역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신라 불교 조각사 연구에서도 중요한 자료입니다.

 

의자에 앉아 있는 미륵부처

 

장창곡 불상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은 ‘의좌상(倚坐像)’이라는 점입니다. 불상 뒷면에는 의자를 표현한 흔적이 뚜렷하게 확인됩니다. 6~7세기 중국 의좌상이 대부분 미륵불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삼국유사》에 ‘삼화령 미륵세존’이라는 기록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불상 역시 ‘의자에 앉아 있는 미륵부처’로 여겨집니다. 중국에서 ‘미륵불’이라는 명문(銘文)이 있는, 의자에 앉은 불상 대부분은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은 설법인(說法印)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장창곡 불상이 미륵부처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7세기 신라를 대표하는 불상

 

장창곡 불상은 연꽃잎이 새겨진 타원형 대좌(臺座) 위에 두 발을 나란히 내려뜨리고 앉아 있습니다. 왼손은 법의(法衣) 자락을 잡고 있고, 오른손은 살짝 구부려 손바닥을 앞으로 향한 채 무릎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몸에 견줘 머리가 큰 신체 비례와 어린아이 같은 모습, 천진난만한 표정, 단순한 옷주름 등은 7세기 신라 불상의 특징입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중국 북주(北周)나 수(隋)의 불상 양식에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중국 장안(長安)에서 유학한 신라 승려들이 7세기 전반에 보수한 북주의 불상이나 이를 계승한 수나라 불상을 가져와 신라에 새로운 양식이 전파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양식의 특징이 바로 4등신의 신체 비례, 동글한 입체감, 어린아이 같은 신체와 얼굴입니다.

 

장창곡 불상은 당대 중국의 조각 양식을 담고 있으면서도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 두툼한 눈두덩이 등은 신라 특유의 양식을 보여줍니다. 불상의 머리 뒤에는 원형 광배(光背)를 표현했고, 광배에는 연꽃무늬를 조각했습니다.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보입니다. 남산 용장곡에서 발견된 부처 머리 역시 민머리에 육계(肉髻)가 낮고, 통통한 얼굴에 두툼한 눈두덩이,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장창곡 불상과 닮았습니다. 이 불상들은 장창곡 불상과 함께 신라 양식을 대표하는 남산의 불상으로 평가됩니다.

 

 

장창곡 불상 양옆의 보살상은 사랑스럽고 친근한 모습 덕분에 ‘아기 부처’로도 불립니다. 두 보살상은 손의 위치나 장식이 다를 뿐 조각 수법은 거의 같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얼굴과 신체 비례,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머리에는 삼면관(三面冠)을 쓰고, 어깨에는 천의(天衣)를 걸쳤으며, 목걸이로 가슴을 장식했고, 손에는 줄기가 달린 연꽃을 잡고 있습니다. 보살상의 대좌는 발견했을 때 이미 사라진 상태여서 1975년에 본존불 대좌를 본떠 새로 만들었습니다.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경주 남산의 많은 불교 유적 가운데서도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중요한 작품입니다. 석실에 모셔졌고,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의자에 앉은 미륵불상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당대 7세기 불상 양식을 따르면서도 단단한 화강암으로 신라 특유의 부드러운 조형미를 표현하여 신라 조각의 대표작이라 할 만합니다.

 

이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남산 장창곡의 작은 석실에 모셔져 신라 승려들에게 소중한 수행처이자 기도처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이제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박물관에서 신라 승려들의 기원이 담긴 삼존불상을 감상하면서 신라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고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전하면 좋을 것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박아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