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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참다’와 ‘견디다’

[우리말은 서럽다 52]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참다’와 ‘견디다’도 요즘 아주 뜻가림을 못 하고 뒤죽박죽으로 쓰는 낱말 가운데 하나다. 국어사전들도 두 낱말을 제대로 뜻가림하지 못한 채로 쓰기는 마찬가지다.

 

1) · 참다 : 마음을 눌러 견디다.

· 견디다 : 어려움, 아픔 따위를 능히 참고 배기어 내다.

 

2) · 참다 : 어떤 생리적 현상이나 병적 상태를 애써 억누르고 견디어 내다.

· 견디다 : 어려움이나 괴로움을 잘 참거나 배겨 내다.

 

3) · 참다 : 웃음, 울음, 아픔 따위를 억누르고 견디다.

· 견디다 : 사람이나 생물이 일정한 기간 동안 어려운 환경에 굴복하거나 죽지 않고 계속해서 버티면서 살아 나가는 상태가 되다.

 

보다시피 ‘참다’는 ‘견디다’라고 풀이하고, ‘견디다’는 ‘참다’라고 풀이해 놓았다. 3)《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두 쪽 말을 서로 주고받아 풀이하지는 않았지만, 한쪽만 다른 쪽 말로 풀이해도 두 쪽이 같아지기는 마찬가지다.

 

이들 두 낱말이 같은 뜻으로 쓰인다면 둘 가운데 하나는 사라져도 그만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다른 뜻을 지닌 두 낱말로 쓰던 것을 우리가 같은 뜻을 지닌 낱말로 쓴다면, 우리는 선조들에 견주어 세상을 절반밖에 알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갈수록 깊고 넓어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세상을 또렷하게 담아내는 우리말을 팽개치고 어름어름 담아내는 남의 말에 매달려 바보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참다’와 ‘견디다’는 서로 뚜렷하게 다른 낱말들이다. 우선 ‘참다’는 사람에게만 쓰고, ‘견디다’는 사람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목숨이면 무엇에게나 쓴다. 여름 땡볕 아래 논밭에서 쟁기를 끌며 땀을 흘리는 소는, 참으며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견디며 일할 수는 있다는 뜻이다.

 

 

참는 것은 생각하는 힘으로 판단한 다음에 굳이 하는 것이지만, 견디는 것은 아무런 생각이나 판단 없이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참는 노릇은 사람밖에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견디는 노릇은 짐승이나 벌레나 푸나무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견디다’는 심지어 목숨 없는 물건들도 할 수 있어서 “저런 시멘트 건물이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같은 말도 할 수 있다.

 

‘참다’와 ‘견디다’는 사람에게 쓸 때도 서로 뚜렷하게 달리 쓰는 낱말이다. 한마디로 참는 노릇은 마음이 하는 것이고, 견디는 노릇은 몸이 하는 것이다. 마음이 참고 몸이 견딘다는 말이다. 조금 더 들어가면, 마음의 슬픔과 서러움은 참아야 하는 것이고, 몸의 괴로움과 아픔은 견뎌야 하는 것이다.

 

“눈물이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하는 말에서 ‘눈물이 나오는’ 것은 몸에서라 할 수도 있지만, 참는 것의 과녁은 눈물을 나오게 하는 마음에 있다. “연꽃이 활짝 피었을 고향의 연못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하는 말에서 보고 싶은 것은 마음에서라 할 수도 있지만, 견딜 수 없는 과녁은 고향으로 달려가고자 하는 몸에 있다. 이처럼 깊고 그윽한 낱말의 속뜻을 제대로 가려 쓸 수 있어야 삶을 깊고 그윽하게 누리는 것일 뿐 아니라, 우리말을 참으로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