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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뛰어난 용기보다는 상대의 마음에 순응함이 으뜸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47]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창(唱)이란 목소리의 울림으로 시작되지만, 부르는 이의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그래서 갑(甲)이 부르면 공감이 크나, 을(乙)이 부르면 그렇지 않은 현상을 보이는 것도 창자(唱者)의 마음가짐에 따라 다양한 소리 색깔이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인천소재 무형유산 전수교육관 <풍류관>에서 첫 발표회를 열게 된 유춘랑은 어려서부터 가족들이 불러주는 서도의 소리들을 들으며 자라났다고 했다. 그만큼 환경적 영향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좋은 음악을 들려주어야 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당위의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유춘랑이 그가 지도해 온 제자들과 함께, 그리고 찬조 출연자들과 함께 무대]에 올린 주요 곡목들은 서도좌창, <초한가(楚漢歌>를 비롯해서 <초로인생(草露人生)>, <봉황곡(鳳凰曲)>, <전장가(戰場歌)>, <공명가(孔明歌)>, <장한몽(長恨夢)>, <영변가>, <연지도 가무> <맹꽁이타령>, <긴 난봉가, 자진난봉가>, <배따라기, 자진배따라기> 등등, 평소에 만나고 듣기 어렵고 귀한 악곡들이었다.

 

먼저, 그와 그가 지도해 온 제자들 전원이 불러 준 첫 곡, <초한가>에 관한 이야기다. 서도소리로 널리 알려진 <초한가>라는 곡명은 남도(南道)소리의 단가에도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소개되고 있는 바, 그 줄거리는 힘이 세기로 유명한 항우(項羽), 곧 초패왕과 유방(劉邦), 한패공이 서로 싸워서 결국은 유방이 이기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 결과 유방은 한(漢)나라의 고조가 되어 400년 한 나라의 기초를 세우게 되었는데, 초한가는 그 전쟁의 과정을 묘사한 내용이다.

 

 

앞에서 남도의 단가로 불려지고 있는 <몽유가-夢遊歌>나 또는 <홍문연가(鴻門宴歌)>를 소개하면서도 이 대목, 곧 항우는 힘은 강했으나 민심을 잃었고, 유방은 민심을 순하게 해서 마침내 초나라 군사를 물리치게 되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이야기 한 바 있다.

 

이 서도 좌창으로 전해오는 <초한가> 역시 그 가사의 내용은 동일한 부분이나, 비슷한 부분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그 노랫말에 담겨진 가락의 전개나 창법, 장단, 기교, 다양한 표현법들은 남도의 창법과 서로 다른 구분이 되고 있다. 이 노래는 과거 서도지방에서 누구나 쉽게 불렀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노래였다고 전한다. 그 만큼 사설의 전개가 사실적이며 분명하고, 박자도 느리거나 지루하지 않으면서 가락의 연결도 상청(上淸)으로 질러내는 대목이 많아 다른 류의 좌창과는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서도좌창 중에서도 가장 널리 불려지고 있는 초한가는 <공명가(孔明歌)>와 더불어 서도 지방의 대표적인 좌창(坐唱)의 하나로 꼽고 있는 소리이다. 그래서일까? 서도소리 전공자와 애호가들은 누구나 배우게 되는 보편화된 소리로 알려져 있다.

 

노랫말의 중심 내용은 초(楚)나라와 한(漢)나라가 서로 천하를 두고 다투었던 사실을 엮은, 곧 한패공인 유방(劉邦)과 초패왕인 항우(項羽)가 싸우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물론 싸움의 결과는 유방의 승리로 끝나게 되며, 패하게 된 항우의 군졸들이 부모와 처자를 그리워하며 애절하게 부르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싸움과정에서 유방은 한신(韓信)을 천하병마도원수로 삼아 초패왕 항우(項羽)를 잡으려 할 때, 간계 많은 이좌거(李左車)가 초패왕을 구리산에 끌어들였고, 계명산 달 밝은 밤에 장자방(張子房)으로 하여금, 옥통소(玉洞簫)를 불게 해서 초나라 8,000 군사를 흩어지게 만들었다는, 그래서 결국 항우가 패망했다는 사실을 엮은 내용이다.

 

서도좌창 <초한가>의 시작 부분을 함께 읽어보도록 한다.

 

   “만고영웅 호걸들아 초한(楚漢)승부(勝負) 들어보소.

    절인지용(絶人之勇-남이 따를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용기) 부질없고,

   순민심(順民心-백성들 마음에 순응함)이 으뜸이라.

   한패공(漢沛公-유방 劉邦)의 백만 대병 구리 산하 십면 매복

   대진을 둘러치고 초패왕(楚覇王-항우 項羽)을 잡으랼 제,

   천하병마 도원수는 표모걸식(漂母乞食-빨래하던 늙은 여인에게 밥을 얻어먹던)

   한신(韓信-젊었을 때, 가난해서 고기잡이를 하며 배고픈 생활을 할 때 밥을 얻어먹었다. 뒤에 갚겠다    고 하니, 여인이 하는 말이 ‘내가 왕손을 사랑하여 밥을 드리는 것이지, 어찌 갚기를 바라리오.’ 했다고    하나, 한신은 뒤에 크게 보상을 했다고 한다.)이라.

   장대에 높이앉아 천병만마 호령헐 제,

   오강(烏江-항우가 전쟁에 지고 스스로 자살했다는 강)은 일천리요,

   팽성은 오백리라.

   거리거리 복병이요 두루두루 매복이라.”<중략>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