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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을 제거하려고 자객을 밀파

일본 군대를 이끌고 김옥균이 쳐들어올 거라는 풍문 한양에 돌아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46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84년 12월 초 구사일생으로 일본으로 몸을 피한 뒤 김옥균은 언제 끌려갈지 모른다는 공포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조선은 자객을 밀파하여 김옥균을 제거하려 한다. 이때 장은규와 송병준이라는 자가 자청하고 나선다. 이 자들은 누구일까? 장은규는 의화군을 낳은 장 상궁의 오라비. 장 상궁이 민비의 미움을 받아 궁 밖으로 쫒겨나면서 곤경에 빠진 집안을 일으킬 목적으로 김옥균 암살을 자원한 것이다. 한편, 송병준은 함경남도 장진 출신으로 민씨 집안의 식객 노릇을 하던 중 개화파와 인연을 맺었다. 1882년 9월 김옥균과 박영효가 방일할 때 안내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김옥균과 아는 사이다.

 

1885년 9월 강은규와 송병준은 고종의 위임장과 자금을 받아 일본에 잠입한다. 김옥균에게 접근한 송병준이 넌지시 귀국을 종용한다. 국내에 들어가 동지들과 함께 병사를 모집하여 도성을 공격하자고 했을지 모른다. 김옥균은 정중히 거절한다. 그는 다른 길을 찾는다.

 

갑신정변 때 주동자들에 의해 영의정에 추대된 바 있는 이재원이 강화도 수령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김옥균은 편지를 쓴다.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내용이다. 곧 일본내 급진세력과 손을 잡고 소총 천여 자루를 마련할 계획이라는 것.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인 후손 가운데서 천여 명을 모아 그 총을 줘 강화도에 상륙시켜 도성을 치겠다는 것이다. 이 편지를 김옥균은 당시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박춘배에 부탁하여 조선에 전달하게 하였다. 박춘배는 예전에 김옥균의 수하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가 품에 안고 간 편지에는 김옥균의 울분과 분노, 그리고 장래의 포부가 들어 있었다.

 

김옥균이 일본 군대를 이끌고 다시 쳐들어올 거라는 풍문이 한양에 퍼지기 시작한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공교롭게도 그해 연말 일본 발로 괴소문이 터진다. 무장한 일본인 무리가 조선에 건너가 정권을 타도하고 조선을 독립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조선을 청나라로부터 해방시키고 동시에 일본의 내정을 혁신하려 한다는 것.

 

이 계획은 일본 정부의 적발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가뜩이나 불안한 조선 조정은 더욱 두려움에 떨게 된다. 오사카 사건이라 일컬어지는 이 사건은 주동자의 이름을 따서 ‘오오이 겐타로((大井太郞)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김옥균이 일본의 자유당 세력과 손잡고 획책한 일로 조선과 청나라는 판단했다. 오판이었지만 말이다.

 

 

오오이 켄타로. 조선의 독립운동과 일본의 민권운동을 연대시키겠다던 야심을 품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김옥균의 편지를 지니고 조선에 갔던 박춘배가 체포되어 파란을 일으킨다. 조선의 외무대신 김윤식은 한양의 일본 공사관에 항의 편지를 보내고 청나라의 실권자 이홍장은 텐진주재 일본 영사 하타노에게 일본정부의 김옥균 체포를 요청한다. 조선정부는 갑신정변 가담자들을 추가로 체포하고 일본 쪽에 김옥균의 송환을 더욱 집요하게 요청한다.

 

김옥균을 암살하겠노라고 일본으로 건너간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장은규는 임무 수행보다는 돈벌이에 몰두한다. 거사 자금으로 고베에서 여관을 운영하며 게이샤를 첩으로 삼았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일은 송병준이 김옥균의 심복이 되어 버린 것이다.

조선 정부는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자객을 파견한다.

 

-다음으로 이어진다

 

 김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