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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태종 즉위 공신 문서, 현존 유일 실물 첫 공개

600년 종가 보존 문서,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지난해 연말 600년 전통의 이천서씨 양경공 종가로부터 360여 점의 자료를 기탁받았다. 이 가운데에는 조선 건국 초기 관료자 태종 즉위 공신인 양경공(良景公) 서유(徐愈, 1356~1411)와 관련된 문서 3점이 포함돼 있다. 해당 문서들은 태조ㆍ태종 대에 서유에게 발급된 왕지 2점과 태종 즉위 공신으로 책록되며 내려진 교서 1점으로, 한국국학진흥원이 기탁 이후 정리 작업과 연구 분석을 거쳐 이번에 처음 공개한다.

 

1401년 발급된 좌명공신교서 실물, 현존 사례 가운데 유일

 

이번에 공개되는 공신 교서는 1401년(태종 1) 2월에 발급된 것으로, 서유(徐愈)가 제2차 왕자의 난(1400년) 당시 이방원을 왕위에 올리는 데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4등에 책록되면서 받은 문서이다. 태종은 즉위 직후 공을 세운 47명을 좌명공신으로 책록했으며, 서유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현재 실물이 전하는 조선 초기 공신 교서 가운데 가장 이른 사례는 1392년(태조 1) 10월 이제(李濟, ?~1398)에게 발급된 개국공신교서다. 이제는 태조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도와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인물이다. 서유의 좌명공신교서는 시기적으로 두 번째로 빠른 사례에 해당한다.

 

당시 함께 책록된 마천목(馬天牧, 1358~1431)은 좌명공신 3등에 올라 녹권과 교서를 받았으나, 현재 실물로 전하는 것은 녹권뿐이다. 교서는 전하지 않고 일제강점기 촬영 사진으로만 존재가 확인된다. 교서는 국왕의 이름으로 공신 책록 사실을 선포한 공식 문서며, 녹권은 토지ㆍ노비 등 포상 내역을 기록한 문서다. 이러한 점에서 서유의 좌명공신교서는 현재까지 실물로 전하는 조선 초기 좌명공신교서 가운데 유일한 사례로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서유 좌명공신교서는 이제의 개국공신교서와 마천목의 좌명공신교서와 같은 형식으로, 조선 초기 공신 교서의 전형을 확인할 수 있다. 문서 앞부분과 말미에 찍힌 보인(寶印) ‘조선왕보(朝鮮王寶)’는 좌명공신교서부터 사용된 것으로 이제의 개국공신교서에는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이 사용되었다. 또한 교서 원본 하단에 붉은 천을 덧댄 형식은 이 문서를 종가에서 ‘단서(丹書)’라 지칭한 근거가 되며, 이른바 ‘단서철권’으로 불린 공신문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394년 서유에게 발급된 왕지(王旨)도 현존 희귀 자료

 

 

과거 관리에게 품계와 관직을 수여할 때 발급한 임명장을 ‘고신(告身)’이라 한다. 조선 초기에는 이를 ‘왕지(王旨)’ 형식으로 작성하다가 세종 때에 ‘교지(敎旨)’ 형식으로 정비되었다. 현재까지 실물로 전하는 왕지는 약 43점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가장 이른 사례는 1393년(태조 2) 10월 도응(都膺, 생몰년 미상)과 박강생(朴剛生, 1369~1422)에게 발급된 왕지며, 다음으로 1394년 3월 진충귀(陳忠貴, ?~1412)에게 발급된 왕지가 남아있다.

 

서유의 왕지는 이들에 이어 현존 왕지 가운데 네 번째로 이른 시기의 자료에 해당한다. 이 왕지는 1394년(태조 3) 9월 태조가 서유를 봉정대부(奉正大夫) 세자우필선(世子右弼善)으로 임명하며 발급한 것이다. 문서의 상하 일부가 훼손되어 첫 줄의 ‘왕지(王旨)’ 가운데 ‘왕(王)’ 자가 결락된 상태이다. 또한 이와 함께 1402년(태종 2) 12월 27일 서유를 추성익대좌명공신 가정대부 이성군 집현전제학 겸 판내자시사로 임명한 왕지도 함께 기탁되었다.

 

이 귀중한 자료들을 기탁한 이천서씨 양경공 종가는 서유의 증손자인 서석손(徐碩孫) 대에 경주로 이거한 이후 현곡면 일대에 터를 잡아 오늘날까지 종가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600년 넘게 선대의 자료들을 정성껏 보존해 왔다. 정종섭 원장은 “이번에 공개된 서유 관련 문서는 조선 건국 초기 공신 제도와 왕명 문서 체계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기록유산”이라며, “6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종가에서 어렵게 지켜온 기록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만큼, 이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널리 공개해 전통기록유산의 깂어치를 확산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