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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1796. 절개를 지키려 목숨을 버렸던 조선의 여인들

1796. 절개를 지키려 목숨을 버렸던 조선의 여인들

조선시대에는 효와 더불어 절개는 아주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는 여인네들이 많았지요. 심지어 절개를 지키려는 주인마님을 따라 같이 죽은 계집종도 있을 정도입니다. ≪정조실록≫ 8년 3월 2일 자 기록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안동 선비 남시윤이 과거 시험장에서 죽었는데, 그의 처 신씨가 장례를 치른 뒤에 치마로 낯을 가리고 물에 뛰어들어 죽자, 그의 계집종도 동시에 물에 뛰어들어 죽었으므로 하루 동안에 절개가 쌍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절개도 효보다는 앞서지 못했습니다. ≪한중록≫ 권3에 보면 영조임금의 딸 화순옹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화순옹주는 남편 김한신이 죽자 식음을 전폐했지요. 그러자 아버지 영조임금이 찾아가서 간곡히 말렸습니다. 그런데도 역시 굶기를 거듭하여 14일 만에 죽습니다. 그러자 관례를 깨고 영조임금은 화를 내며 열녀문을 세우지 못하게 합니다. 아버지의 말을 거역해 죽었다는 것 때문이지요. 물론 뒤에 정조임금에 의해 열녀문은 세워졌습니다.

이밖에 ≪현종실록≫에 보면 병자호란 때 미처 피난가는 배에 오르지 못한 처녀의 얘기도 나옵니다. 배에 오르지 못한 처녀를 어떤 사람이 손으로 당기려 하자 “내가 손을 당신에게 준다면 피난할 게 뭐가 있겠는가?”라고 말한 뒤 스스로 물에 빠져 죽었다.”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렇게 조선사회는 현대인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여인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잘못된 풍속이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