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절개도 효보다는 앞서지 못했습니다. ≪한중록≫ 권3에 보면 영조임금의 딸 화순옹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화순옹주는 남편 김한신이 죽자 식음을 전폐했지요. 그러자 아버지 영조임금이 찾아가서 간곡히 말렸습니다. 그런데도 역시 굶기를 거듭하여 14일 만에 죽습니다. 그러자 관례를 깨고 영조임금은 화를 내며 열녀문을 세우지 못하게 합니다. 아버지의 말을 거역해 죽었다는 것 때문이지요. 물론 뒤에 정조임금에 의해 열녀문은 세워졌습니다.
이밖에 ≪현종실록≫에 보면 병자호란 때 미처 피난가는 배에 오르지 못한 처녀의 얘기도 나옵니다. 배에 오르지 못한 처녀를 어떤 사람이 손으로 당기려 하자 “내가 손을 당신에게 준다면 피난할 게 뭐가 있겠는가?”라고 말한 뒤 스스로 물에 빠져 죽었다.”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렇게 조선사회는 현대인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여인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잘못된 풍속이 있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