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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고장 우지시에서 만난 기모노 차림의 두 여인







 


지난여름 나는 우리문화를 사랑하는 분들의 안내 겸 통역을 맡아 천년고도 교토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일행 중에 고대건축을 공부하는 분이 있어 일본 불교건축의 최고라는 뵤도인(평등원, 平等院)을 보러 교토 남동쪽에 있는 우지시(宇治市)에 갔을 때였다. 일본 돈 10엔짜리 동전 뒷면에 새겨진 뵤도인은 백제계 도래인 후지와라(藤原)가문과 관계가 있는 천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사찰로 뵤도인 앞에 길게 이어진 아름다운 연못 속에 비친 건축물과 푸른 소나무의 휘늘어진 자태는 한폭의 그림 같아 건축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가볼만한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한국 여행사들도 앞다투어 뵤도인을 새로운 코스로 집어넣고 있어 한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곳이다.

"두 분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뵤도인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마주친 기모노 차림의 두 여인과 우리 일행은 신호등 앞에서 만났다. "기레이데스(아름답다)" 기모노 차림의 여인들만 보면 다가가 이 말을 건넨 사람은 모 잡지사 문화부 최 기자로 그 덕분에 우리는 일본전통 옷차림의 많은 여인과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아름답다, 예쁘다"라는 말은 여성을 꼬시는(?) 세계 공통어일뿐 실제 모습은 그다지 예쁘지 않았지만 단정한 기모노 차림만은 아름다웠다.

기모노 차림의 두 여인과 우리 일행은 뵤도인으로 가는 입구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었다. 진회색의 수수한 기모노차림의 평범한 중년여인은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특별히 기모노를 즐겨 입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두 여인은 주저 없이 명쾌하게 대답했다. "여기는 우지시입니다. 역사의 고장이지요. 이런 곳에 사는 사람이 자기 전통옷을 즐겨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우리 일행은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한복을 잘 안 입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천 년 고도 경주나 주변 도시에서 평상복으로 한복을 입은 여인을 본 적이 별로 없다. 부끄러웠다. 경주는 고사하고 얼마 전 신라 호텔의 한 뷔페식당에서 ‘한복은 위험한 옷’으로 낙인 찍혀 출입을 금지당한 기사까지 나왔으니 말이다.

원래 기모노는 입기가 몹시 까다로운 옷이다. 익숙하다 해도 여러 번 동여매는 끈과 겉옷의 포인트에 해당하는 오비(띠)까지 매기에는 땀을 뻘뻘 흘리고 옆에서 도와줘야만 입을 수 있을 정도로 절차가 복잡하다. 속치마 입고 겉치마를 쓰윽 휘두르고 그 위에 저고리를 입는 한복 입기에 비하면 기모노는 비교 대상이 안될 만큼 시간이 걸리는 옷이지만 일본여인들은 평상복으로 기모노 입기를 즐긴다. 한복에 견주면 무척이나 불편한 옷을 일본 여인은 자랑스럽게 입는 것이다.

만일 일본의 호텔에서 기모노 입은 여인 출입 금지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 호텔은 바로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 기모노 입는 층이 많기에 심한 여론의 따가운 화살을 견딜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복 입는 층이 적어서일까? 하루 이틀 만에 호텔 대표가 사과하고 싱겁게 끝나 버린 느낌이다.

“복종”이란 말이 있다. 한자로는 “服從”이라 쓰는데 국어사전에서는 “남의 명령이나 의사를 그대로 따라서 좇음”이라고 해석했지만 실제로 여기서 말하는 ‘服’은 정신을 뜻한다. 서양 옷을 입으면 서양정신을 그대로 좇아가는 것이다. 우리 옷을 입는 것은 그래서 소중한 일이다. 신라호텔의 한복 사건을 보며 갑자기 지난여름 우지시의 기모노 여인들이 떠오른다.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이윤옥(59yo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