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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만 대롱대롱 데루데루보우즈









 


눅눅한 장마철이 계속되면 쨍하고 볕 드는 날이 그리워진다. 빨래도 안 마르고 집안은 눅지다. 그뿐만 아니라 특히 밖에 나가서 놀고 싶은 아이들에게 장마철은 길고 지루하다. 이때 일본에서는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데루데루보우즈(てるてる坊主) 인형을 만든다.

흰 천으로 사람의 머리 모양을 만들어 처마 밑에 매달아 두면 비가 그친다는 속설을 가진 데루데루보우즈의 유래는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랑(晴娘)” 낭자의 전설로부터 비롯된 중국의 청랑낭자 인형은 종이로 만들며 여자모양으로 빗자루를 들고 있는 모습인데 견주어 일본의 데루데루보우즈는 헝겊으로 만들고 남자 모양에 빗자루를 들고 있지 않다는 점이 다르다.

데루데루보우즈가 일본에 전해진 것은 헤이안시대(에도시대라는 설도 있음)로 보고 있으며 헤이안시대에는 기우제(祈雨祭)라든가 기청제(祈請祭)를 주로 승려들이 담당했던 관계로 데루데루보우즈 인형이 박박 머리의 남자 승려 모습이 아닌가 하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히요리보우즈(日和坊主)라고도 불리는 데루데루보우즈는 머리를 위로해서 처마 밑에 달지만 거꾸로 달면 비를 내리게 한다는 뜻도 있으며 요사이는 흰 헝겊이 아니라 색색의 헝겊으로 만드는 등 하나의 장식품처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여름철 일본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가끔 이런 데루데루보우즈 인형이 처마 밑에 대롱대롱 매달린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는 장마철 처마 밑에 매다는 것이지만 요사이는 관광버스 안에도 마스코트처럼 깜찍한 데루데루보우즈를 운전석 옆에 매달고 다니는 기사도 있다. 아마도 궂은비 내리는 날 운전의 위험을 막기 위한 운전사의 바람일지 모르겠다. 작년 큐슈 지방을 답사할 때 전세버스 안에도 데루데루보우즈 인형이 운전석 옆에서 달랑달랑 흔들리고 있었다. 운전사는 30대 젊은이였던 기억이다.

재미난 것은 아사하라(淺原六朗) 씨가 작사한 일본 동요에 데루데루보우즈가 나오는데 3절 가사에 “날이 개지 않으면 목을 댕강 자르겠다 (晴れにならなければ首をちょん切る)”라는 부분이다. 이를 두고 방송에서는 잔혹한 표현이라 자막을 지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잔혹이라는 말을 들으니 문득 한국의 옛 가락국 사람들이 구지봉에 모여 왕을 맞으려고 흙을 파며 함께 불렀다고 하는 구지가가 떠오른다.

"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잔인하기로 따지면 머리를 구워 먹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한국에서는 이 노래를 그렇게 잔인하게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설화 속의 노래일 뿐이다. 데루데루보우즈가 비를 멈추게 하지 않는다면 머리를 댕강 자르겠다는 것 역시 그런 차원이 아닐까?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일본인의 의식 밑바닥에 드리워진 또 하나의 잔혹한 장면이 떠오른다.

2차 대전 때 일본군의 총칼 밑에 깔려 죽은 아시아인 사진은 패전 후 얼마간은 일본의 교과서에 실렸었다. 그러던 것이 잔혹하다 해서 슬금슬금 빼더니 언제부터인가 일본은 자신들이 행한 아시아인에 대해 잔혹한 행위를 슬쩍 감추고 그 대신 일본이 아시아해방을 위해 온정의 손길이라도 베푼 양 호도하고 있다. 처마 밑에 대롱대롱 매다는 비를 멈춰달라는 뜻의 데루데루보우즈를 바라다볼라치면 일본인에 의해 저질러진 남경대학살기념관에서 보았던 목 잘린 채 철조망에 매달려 있던 처참한 중국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일본한자는 구자체로 표기했습니다.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 이윤옥 (59yo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