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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폭염 속의 아스카를 걷다<1>-아스카절과 아스카대불-









 




아스카의 넓디넓은 땅 스이코 여왕의 도요우라궁
예전엔 소가 씨의 개인 절터 자리였었지
지금은 향원사 주지 마나님 벗들이 차 마시는 곳
가까이에 있는 아스카절 종소리 사라진지 오래
금당 부처님만 고구려 혜자스님 후손 보고 살며시 미소 짓는다.

'백제 없이는 아스카는 없다’고 할 정도로 일본 남부지방인 아스카-나라-오사카 지역은 한반도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연일 39도의 폭염으로 일본 열도에서 열사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속출하던 7월 초순 다시 찾은 나라 아스카 지역도 수은주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아스카는 한자로 ‘飛鳥’, ‘明日香’, ‘安宿’ 등으로 표기하는데 모두 일본말 소리는 아스카(asuka、あすか)로 난다. 비조(飛鳥)라는 한자를 새겨 어떤 이들은 새들이 많이 나는 곳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특별히 새와 관계있는 곳은 아니다. ‘明日香’이라고 쓰는 경우는 당시 수도가 아스카에 있었으므로 밝은 내일을 기약하는 고장이란 뜻 새김이 있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安宿’이라고 쓰는 경우도 싸움이 없이 평온하게 쉴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부여해도 무방할 것이다.

원래 아스카는 지금의 나라현(奈良 高市郡 明日香村)과 오사카(大阪府 羽曳野)에 있었는데 오사카의 아스카는 가와치아스카(河內飛鳥)이고 나라현의 아스카는 야마토아스카(大和飛鳥) 라 불렀으나 오늘날 아스카라하면 나라현의 아스카 지방을 일컫는 게 일반적이다.

나라현의 아스카 지방은 백제의 수도인 충청도 부여 지방을 연상케 하는 지형이다. 창밖에 펼쳐진 논밭의 모습과 점점이 들어선 마을 모습 그리고 집 뒤에 펼쳐진 야트막한 야산들이 영락없이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 중국의 지방 도시와는 사뭇 다른 아스카와 부여의 닮은 모습은 두 지방의 교류가 있던 천오백여 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아스카에서 먼저 찾은 곳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절인 아스카절(飛鳥寺, 596년)이다. 긴테츠(近鐵) 가시와라진구마에역에 내려서 600엔짜리 1일 회수권을 이용하면 아스카 지역을 자유롭게 돌아볼 수 있어 편리하다. 주유버스(周遊)라는 이름이 붙은 이 순환버스를 그야말로 유람하듯 천천히 타고 다니며 아스카의 향기를 맡아보는 것이 아스카 여정의 운치이다. 순환버스에 올라 아스카대불 정거장에 내리면 바로 아스카절이 반갑게 맞이한다. 반가운 것은 그뿐이 아니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라며 입장료를 받는 아가씨들이 정확한 우리말 발음으로 나그네를 맞이하는 것 또한 정겹다. 또한, 주지인 야마모토 호우준 스님은 절을 찾는 한국인들을 위해 한글 안내문을 만들었다. 절의 유래를 이 안내문의 일부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스카절은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인 서기 588년에 소가노우마코 대신에 의해 건립·발원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절입니다. 이보다 앞서 서기 538년에 한국의 옛 백제국 제26대 성명왕 때 위대한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상 등이 일본에 전파 수용되었습니다. (중략) 이 절의 건립을 위해 고구려시대의 설계도를 받아들여 백제국에서 파견된 승려와 전문 기술자의 지도와 협력에 의해 서기 596년 훌륭한 절이 완성되어 훗날 일본 불교문화 형성의 원점이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아스카에 수도를 세우는 근원이 되었습니다. (중략) 이 절의 탑 건축에는 백제국에서 보내진 부처님 사리가 수장되어 있으며 지붕의 기와는 백제계 기와가 사용되었습니다. 백제와 고구려 문화의 은택으로 이렇듯 일본문화 향상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해주신 귀국 선인들의 수고에 깊은 존경심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중략) 이곳에는 백제의 혜총법사와 고구려의 혜자 법사가 머물며 성덕태자의 스승으로 계셨습니다.(후략)”

A4 용지 한 장 빼곡하게 한글로 쓰인 안내문은 일본어를 모르는 한국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7세기 이전에 건립된 일본의 많은 절은 이처럼 한반도 장인들의 손에 의해 건립된 절이 대부분이지만 아스카절같이 솔직히 그 절의 유래를 밝힌 곳은 많지 않다. 정사인 <일본서기, 720년>나 <고사기, 712년> 따위의 역사서에 명백히 ‘백제, 고구려, 신라인’들의 대일본 활약상이 드러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일본의 대부분 절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감춘 채 대충 얼버무린 곳이 많다. 그에 견주면 아스카절은 대단한 용기이다. 그것도 한글판을 만들어 나눠줄 정도이니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스카대불을 보러 금당 대불전에 들어서니 기타야마(北山)라는 이름표를 단 자원봉사자가 다가와 친절한 안내를 해줬다. 물론 이 분은 일본 방문객을 위한 자원봉사자로 일본말로 설명을 했지만 고대 백제와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불상을 만들 때에 고구려의 대흥왕이 황금 320냥을 보내왔습니다...." 기타야마 씨는 한국에서 온 백제인의 후손이 반가운 듯 천오백 년 전 아스카절이 세워지고 번성하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해주었다.


                    (다음 주 2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