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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 폭염 속의 아스카를 걷다<2> -백제 의연스님 머무신 곳-



날은 더워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가운데 오카데라(岡寺, 나라현 타카이치시 아스카무라 오카 806)를 찾아가는 길은 고역이었다. 천여 년 전 백제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니라면 도중에 목적지를 바꾸고 싶을 만큼 칠월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가시와라진구마에역에서 1시간에 한 대씩 다니는 600엔짜리 1일자유권 버스를 타고 오카데라마에(岡寺前)에서 내려 한 십여 분 거리지만 경사진 언덕 위의 절까지 가기에는 숨이 차오른다. 절로 가는 길은 작은 승용차 하나 다니기도 버거울 만큼 좁았고 양쪽으로는 주택들이 들어 서 있었다. 한국에 그 흔한 마을버스는 아예 길이 좁아 엄두도 못 낼 곳에 오카데라는 자리하고 있었다.

절 입구에서 300엔의 입장료를 내면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무척 반긴다. 보아하니 저 밑의 아스카데라(飛鳥寺) 까지는 한국인들이 찾아 와도 이만치 떨어진 언덕에 자리한 오카데라(岡寺)를 찾는 한국인은 드물었을 듯싶다. 이곳은 사전에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면 발길을 옮길 수 없는 절이다. 서부 일본을 중심으로 한 서국 33 (西三十三箇所) 관음도량 성지 중 7번째 절이라고는 하나 우리 일행이 절을 찾았을 때는 사람 하나 얼씬거리지 않았다.
오카데라는 동대사 등 나라 지역의 관광객이 몰리는 절이 아님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오카데라를 지은 백제의 의연(義淵, 643~728)스님은 어떤 분일까? 의연스님을 말하기에 앞서 의연스님의 제자들을 살펴보면 더 확실히 의연스님을 알게 될 것이다. 손꼽히는 제자는 나라시대 최고의 절 도다이지(동대사, 東大寺)를 지은 행기(行基)스님과 양변(良弁)스님을 꼽을 수 있으며 현방(玄昉), 강존(隆尊), 도자(道慈), 도경(道鏡)스님 등 일본의 많은 고승이 의연스님의 제자들이다.

오카데라와 의연스님과의 인연에는 재미난 설화가 따르는데 절의 창건 역사에 나오는 대목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사전(寺)에 따르면 1300년 전 천지왕(天智天皇)의 발원으로 의연승정(義淵僧正)이 건립한 절이 강사(岡寺)이다. 옛날, 이 고을에 애를 낳지 못하는 부부가 관세음보살에게 간절히 기도를 올렸는데 어느 날 아기 우는 소리와 함께 흰 보자기에 싸인 물건이 담장에 놓여 있어 집안에 가지고 들어와서 풀어 보니 향기가 퍼지는 가운데 의연스님이 나왔다. 이 사실이 천지왕(天智天皇)에게 전해지자 왕은 의연스님을 궁정으로 불러들여 자기의 아들인 초벽왕자(草壁皇子)와 함께 길렀다. 훗날 의연스님은 이 자리에 용개사(龍蓋寺, 류가이지)를 지었는데 이것이 강사(岡寺)의 전신이다. 의연스님은 일본 최초의 법상종을 전해준 분으로 제자에는 동대사의 양변(良弁)스님, 생보살로 알려진 행기(行基)스님 등 나라시대의 쟁쟁한 고승은 모두 의연스님의 제자이다”

위 이야기에서 나오는 담장 아래 놓여 있던 ‘갓난아기’는 미스터리의 주인공인데 천지왕이이 아이를 자신의 왕자와 함께 키웠다는 것이 범상치 않다. 출신 성분도 모르는 아이를 왕실에서 차기 왕이 될 태자와 함께 키운다는 것은 어느 왕조에서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혹시 왕실가의 아들이 귀했다면 모르지만 당시 천지왕(626-672)은 왕후와 궁녀 등 부인이 9명이나 되고 이들 소생의 자녀가 16명이나 있던 사람이다. 이러한 수수께기를 풀기 위해서는 의연스님의 출신을 알아야 한다. 의연스님은 그 출신이 이치키시(市往氏)이며 이 성씨는 조정에서 하사받은 성씨로 『신찬성씨록, 新撰姓氏』에 다르면 ‘백제 성명왕으로부터 유래한다, 百聖(明)王より出づ’라고 되어 있다. 일설에는 천지왕이 큐슈 행차 시에 백제 성명왕의 후손인 호족의 딸과 관계를 맺고 낳은 게 의연스님이라는 설도 있다.

문제는 오카데라 측에서 의연스님=백제출신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두루뭉술 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법상종의 시조’로 알려진 의연스님은 여러 문헌에서 그 출신이 백제인임을 기록하고 있는데 정작 오카데라 쪽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천여 년간 열심히 의연스님을 받들어 모시고 있다. 해마다 의연스님을 위한 제사 공양을 곁들인 다도회(野点茶)가 열리는 데 이 날은 선착순 1,000명에게 무료로 차를 대접하기도 한다.

바람 한 점 없는 칠월의 오카데라는 더위 속에 지친 듯 고요하다. 자판기의 시원한 생수 한 모금을 대웅전 앞 휴게소 텅 빈 의자에 앉아 마셔본다. 절을 창건하고 매년 공양을 올리는 것까지는 좋은데 이 훌륭한 의연스님이 백제 출신이라는 것까지 알렸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오카데라 언덕길을 내려왔다.
                                                                      (다음 주 3편으로 계속)

*일본한자는 구자체로 표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