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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식

단식과 대한제국 말기 의병장 향산 이만도

   

“얘 얘 이 책도 담아라”
단식원을 가려고 짐을 꾸리는 나에게 엄마는 ‘향산 이만도’라는 책을 찔러 넣어 주셨다. 나는 올해 스물여섯 살로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나 고질적인 아토피로 이 약 저 약을 쓰다 급기야 엄마 손에 이끌려 화순군에 있는 한 단식원에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영어 전공이다 보니 가난한 대학원생에게 여름방학은 둘도 없는 아르바이트 기회이건만 미리 예약한 과외마저 포기하고 10일간의 단식행을 감행해야 할 만큼 내 얼굴의 아토피는 나를 괴롭혔다. 아토피도 계절을 타는 듯 여름이면 더욱 심해 여드름 자국 하나에도 민감한 여성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구겨 나는 큰맘 먹고 10일이라는 내 인생 초유의 ‘굶기’ 작전에 들어갔다.

깡마른 편인 나는 평소 한 끼만 안 먹어도 휘청거릴 체격인데 이제 나는 죽었구나 싶었다. 화순군 인계리에 있는 단식원은 해관 장두석 선생님이 직접 수련생들에게 ‘단식의 모든 것’을 알려 주시는 곳이다. ‘아이구 딸내미 참을 수 있나? 밥이 안 넘어간다.’고 수시로 무시로 엄마는 서울에서 문자를 보냈지만 뜻밖에 단식은 견딜 만했다.

처음엔 기운이 좀 빠졌지만 물과 소금, 그리고 몸에 좋은 효소 등을 섭취하면서 단순히 굶기만 하지 않고 명상과 산책 그리고 정신력을 키우는 여러 강좌를 들으면서 하루하루 지나다 보니 사람이 매일 섭취하는 먹거리에 대한 인식을 깊이 하게 되었다. 엄마가 짐 속에 찔러 넣어준 <향산 이만도> 책은 24일간 단식하다 숨진 애국지사 이야기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향산 이만도 선생은 젊어서부터 장원급제를 하는 등 문인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퇴계 이황의 후손으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의병항쟁과 상소운동을 펼친 분이다. 그러나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임금과 나라를 지키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단식에 들어갔고, 단식 24일 만에 순국하였다.

아마도 엄마는 내가 밥을 먹지 못할 때 이분을 떠올리라고 책을 넣어 주신 것 같다. 새삼 엄마의 마음 씀에 눈가가 촉촉이 적셔옴을 느낀다. 단식은 죽음에 이르는 시일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다른 어떤 자결보다 고통스럽고 강한 의지가 필요할 것이라는 것을 이번 단식을 통해 깨달았다. 향산 이만도 애국지사의 강인한 저항정신이 절절이 몸에 와 닿았다.

석사 논문을 앞두고 바쁜 마음인데다가 방학 아르바이트까지 산통이 깨진 지난 열흘간의 단식에 참가하기까지 처음엔 많이 망설였지만 매우 뜻 깊은 시간이었다. 수많은 분의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뛰시는 장두석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이 기간에 현대인들이 얼마나 위험한 먹거리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 탓에 얼마나 심각한 피해를 보아왔는지를 배웠다. 우리가 안전한 먹거리를 먹고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소위 음식에 장난을 치는 사회풍토를 빨리 바꿔야 한다고 본다. 또한, 고기나 과자, 빵 등의 음식 자체가 몸에 해롭다기보다는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위험성을 제거하는 일도 시급함을 느꼈다.

호르몬제를 맞아 사육된 가축이 아니라 건강하게 자란 가축의 육류를 섭취하고 무농약과 유기농 채소로 병든 식단을 살려야 현대인들이 시달리고 있는 각종 질병에서 해방될 것이다. 열흘 단식으로 나의 아토피가 완치된 것은 아니다. 다만, 앞으로의 식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스스로 익히게 된 귀한 시간이었다. 지난 10일간의 단식을 향산 이만도 선생의 단식과 견줄 수는 없지만 나라 잃은 아픔을 단식의 정신으로 보여주신 그 깊은 의미를 새기는 계기도 된 이번 단식 수련은 아까운 시간을 버린 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날의 건강을 지키는 고마운 시간이기도 했다. 이곳을 안내해주신 아빠, 엄마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독자 최서영 /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