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몹시 무더운 날이었다. 설렘과 긴장감으로 전날 밤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해 눈이 약간 퍽퍽했다. 2주 전, 나의 어머니인 의 저자인 이윤옥 씨께 영문편지 번역을 부탁받았다. 1919년 3월, 가르치던 학생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다 유관순과 함께 수감생활을 해야 했던 오정화 여사님의 손녀인 아그네스 안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일생을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안 선생님이지만, 그녀는 몇 해 전 떠들썩했던 가 미국 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학부모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안 선생님을 위해 나는 기쁜 마음으로 통역의 역할을 맡았다. 영문과 졸업에 현재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는 나지만 사실 영어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서울에 있는 한 호텔에서 어머니를 만나 안 선생님을 기다렸다. 서로 생김새도 모르는데 어떻게 알아볼까 궁금해하던 찰나 우리를 보고 반갑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까만 단발머리의 아그네스 안 선생님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몇 차례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상상했던 안
“얘 얘 이 책도 담아라” 단식원을 가려고 짐을 꾸리는 나에게 엄마는 ‘향산 이만도’라는 책을 찔러 넣어 주셨다. 나는 올해 스물여섯 살로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으나 고질적인 아토피로 이 약 저 약을 쓰다 급기야 엄마 손에 이끌려 화순군에 있는 한 단식원에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영어 전공이다 보니 가난한 대학원생에게 여름방학은 둘도 없는 아르바이트 기회이건만 미리 예약한 과외마저 포기하고 10일간의 단식행을 감행해야 할 만큼 내 얼굴의 아토피는 나를 괴롭혔다. 아토피도 계절을 타는 듯 여름이면 더욱 심해 여드름 자국 하나에도 민감한 여성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구겨 나는 큰맘 먹고 10일이라는 내 인생 초유의 ‘굶기’ 작전에 들어갔다. 깡마른 편인 나는 평소 한 끼만 안 먹어도 휘청거릴 체격인데 이제 나는 죽었구나 싶었다. 화순군 인계리에 있는 단식원은 해관 장두석 선생님이 직접 수련생들에게 ‘단식의 모든 것’을 알려 주시는 곳이다. ‘아이구 딸내미 참을 수 있나? 밥이 안 넘어간다.’고 수시로 무시로 엄마는 서울에서 문자를 보냈지만 뜻밖에 단식은 견딜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