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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몹시 무더운 날이었다. 설렘과 긴장감으로 전날 밤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해 눈이 약간 퍽퍽했다. 2주 전, 나의 어머니인 <서간도의 들꽃 피다>의 저자인 이윤옥 씨께 영문편지 번역을 부탁받았다. 1919년 3월, 가르치던 학생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다 유관순과 함께 수감생활을 해야 했던 오정화 여사님의 손녀인 아그네스 안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일생을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안 선생님이지만, 그녀는 몇 해 전 떠들썩했던 <요코 이야기>가 미국 학교에서 교과서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학부모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안 선생님을 위해 나는 기쁜 마음으로 통역의 역할을 맡았다. 영문과 졸업에 현재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는 나지만 사실 영어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서울에 있는 한 호텔에서 어머니를 만나 안 선생님을 기다렸다. 서로 생김새도 모르는데 어떻게 알아볼까 궁금해하던 찰나 우리를 보고 반갑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까만 단발머리의 아그네스 안 선생님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몇 차례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상상했던 안 선생님보다 훨씬 젊고 미인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척을 만난 듯이 우리는 자리를 잡자마자 서로 반가움과 사연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통역이라고 나름 생각해둔 인사말도 모두 잊은 채 정신없이 안선생님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비록 그들의 언어는 나를 통해 전달되었지만 그들의 감정은 그저 서로 바라보는 눈빛으로도 충분했다. 귀로는 들리지 않는 두 사람의 가슴 벅찬 감정, 그것은 바로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아들 마이클이 학교에서 돌아와 ‘왜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을 그렇게 괴롭혔나요?’라고 말하며 울었던 그날의 충격을 안 선생님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거짓과 왜곡으로 가득 찬 <요코 이야기>를 마치 진실로 엮은 자서전으로 여겨 교과서로 채택한 미국 학교들의 행태를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왜곡된 역사를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미국의 선생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이러한 결심에는 그녀의 할머니가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을 그 직후 알게 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았다. 이렇게 시작된 그녀의 활동은 그녀의 할머니였던 오정화 여사 못지않게 열성적이며 강건했다. 그녀는 의사라는 바쁜 직업을 가졌으면서도 미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해마다 한국을 방문하여 미국 교사들을 위한 세미나도 준비한다. 관련 자료가 있다면 하버드 대학도 중국과 일본까지도 달려갔다. 조국에서 그리고 타국에서 독립을 위해 싸우다 무명으로 죽어간 들꽃 같은 그녀들을 알리기 위한 <서간도의 들꽃 피다>의 저자 이윤옥 시인과 안 선생님의 모습은 놀랍도록 흡사했다.
이런 두 여성이 만났을 때 그 동질감과 감격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온전히 느끼기에는 너무나 짧았던 이 만남이 얼마나 아쉬웠는지 자리에 함께했던 나로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임시 통역가로서 나는 언어의 힘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의 힘을 배우고 돌아왔다. 비록 이분들의 활동은 언어로 기록되고 언어를 통해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마음과 정신, 그것은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이해하며 서로 보듬는 ‘한국인’만의 들리지 않는 언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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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최서영 /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