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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19. “정순임 명창의《약 일래라, 토끼 간이 약 일래라》”를 보고

 
      
 
 
지난 7월 초, 중국 연변에서는 한국전통음악학회와 중국 연변예술대학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13회 전통음악교류회가 열렸는데, 학술 토론과 공연 교류 행사에 국내 유명 교수들과 명인명창 40여 명이 참가하여 교류회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긴 바 있다.

이 행사에 참가했던 판소리 명창 정순임 씨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판소리와 가야금 병창을 실연하였는데, 소리도 소리이려니와 멋들어진 발림(사설에 맞는 몸동작)으로 객석의 열띤 갈채를 받았다.

중국의 연변지역이란 곳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중조(中朝)변경지역이다. 폭 30~40m의 두만강은 노래 가사에 나오는 환상적인 푸른 물이 아니라 뿌옇다 못해 완전히 죽어 버린 강이 되었다. 이 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인 중국의 도문 시와 남쪽인 북한의 남양 땅이 마주 보고 서 있는 것이다.

이 연변지역은 조선족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언어나 음식의 불편이 거의 없다. 거리의 간판은 모두 한글을 먼저 쓰고 밑에 한문을 달아 무엇을 하는 건물인지 무슨 물품을 파는 곳인지 알 수 있어 딴 나라 같지 않고 친숙하다. 연변은 전통문화를 비롯해 여러 방면으로 북한의 영향을 받은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남한과 수교가 된 90년대 초반 이전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또한 왕래가 잦았기에 자연스레 북한의 영향을 받은 것은 당연한 사실이라 하겠다. 특히 음악의 경우 북한의 음악이 연변에서 거의 그대로 성행되어 온 대표적인 분야라 할 것이다.

북한에서는 느린 속도의 노래나 또는 음색이 맑지 않은 노래들은 대부분 없어졌다. 대신 빠르고 높으면서도 가성(속소리)으로 부르는 창법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렇기에 쉰 목소리로 길게 부르는 듯한 판소리는 끊어진 지 이미 오래된다. 부르지 않기 때문에 명창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북한처럼 연변 지역에서도 인기가 없는 분야 중의 하나가 곧 판소리 분야인 것이다. 현재에는 이렇다 할 소리꾼도 없고 또한 들을 기회도 없어 단절의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 중 실연교류회가 있던 날, 대학극장에 모인 학생들이나 교수들은 정순임 명창이 부르는 《흥부가》의 〈박타는 대목>에 넋을 잃고 빨려들고 있었다. 소리도 소리이려니와 특유의 발림이 일품이었고, 아니리도 좋아서 판소리의 진면목을 여지없이 보여준 감동적인 무대로 깊게 남았던 것이다.

얼마 전, 정확하게 지난 8월 3일 밤, 경주 보문관광 단지 내에 있는 야외무대에서는 정순임과 그의 예술단 단원들이 창극 《약 일래라, 토끼 간이 약 일래라》를 올렸다. 천년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창극이 공연되는 것은 경상북도가 무대공연 지원사업의 하나로 창극을 육성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며 정순임과 같은 대명창이 경주에서 활동하고 있기에 또한 가능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는 여러 해 전부터 제자들과 더불어 해마다 혹서기에 경주시민을 위한, 그리고 경주를 찾는 국내, 국외의 관광객들을 위하여 보문관광 단지 야외무대에서 여러 작품을 기획하고 공연해 왔다. 《유관순 열사가》《이차돈》《놀보전》《수궁가》《구운몽》《서동왕자와 선화공주》《연꽃에 핀 청아》《토끼야 용궁가자》《쌀 퍼주고 떡 사먹는 여자》와 같은 작품들이 그동안에 공연되었던 성공작들로 기록되고 있다.

해마다 창극 공연에 참여해 온 정경옥(가야금병창 연주자) 씨는 “창극이 소리만 된다고 무대에 올려지는 것이 아니고 작품이나 연출, 대사와 연기, 모두가 맞아야 하는데,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이 좋다 보니까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준비를 하게 되었다.”라고 그간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이번에 올려진 《약 일래라, 토끼 간이 약 일래라》는 판소리《수궁가》를 줄거리로 하는 작품이다. 수궁가 줄거리는 남해의 용왕이 큰 병을 얻었는데, 토끼간이 약이 된다고 하여 별주부가 세상에 나가 토끼를 수궁으로 데리고 온다. 생전 처음 육지에 나간 자라(별주부)가 호랑이와 상면하면서 싸우는 대목이나 토끼를 꾀어 겨우 반승락을 받아 놓았는데, 여우가 중간에 끼어들어 수궁에 가면 죽는다고 훼방을 놓는 대목 등등이 매우 재미있게 묘사되었다. 우여곡절 속에 별주부는 토끼를 수궁으로 데려오는 데까지는 성공한다. 그러나 토기는 “특수 체질이기에 간을 산에 두고 왔다.”라는 궤변으로 용왕을 설득한 다음 다시 세상으로 살아나온다는 줄거리의 이야기이다.

아마도 임금을 향한 별주부의 충성심을 강조하는 대목이나 생사의 고비를 맞은 토끼가 번뜩이는 재치로 수궁을 탈출한다는 극적인 이야기의 전개 때문에 세인들이 이 수궁가를 재미있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공연평을 곁들인 이야기는 다음 주에 계속하기로 한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