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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148살짜리 왕이 있다"는 일본왕실 스케치














 
 













"148살 짜리 왕이 있다" 는 일본왕실 스케치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꿈이다. 그래서 장수를 위해 별의별 것을 다 구해 먹는가 하면 제약회사들은 장수를 위한 약을 개발하려고 안간힘이다. 의학이 발달한 오늘날 장수라고 해도 100살을 넘기는 일은 쉽지 않다. 기록상의 장수 인물을 보면 로버트 테일러(1764-1898) 라는 영국사람으로 무려 134살을 살다 갔다고 한다. 그의 장수에 빅토리아 여왕은 "희유(希有)의 장수를 축하하여,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로버트 테일러에게"라는 서명이 담긴 여왕의 초상화를 선물했는데 일설에는 이 선물을 받고 감격한 나머지 세상을 뜨고 말았다니 웃어야 할 일인지 안타까워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금세기도 아니고 지금으로부터 1천여 년 전 이웃나라에 100살을 훨씬 넘긴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니 가히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다름 아닌 일본 왕(천황)들의 수명이다. 1대 왕인 진무왕은 127살, 5대 효소왕은 114살, 6대 효안왕은137살, 7대 효령왕은 128살이고 12대 경행왕은 무려 148살을 기록하고 있다. 또 16대 왕인 인덕왕도 143살까지 살다갔다니 대단한 장수 왕실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일본의 놀라운 의술이 화제가 되어 장수에 대한 수많은 논문과 연구가 쏟아져 나와야 할 텐데 그에 대한 기록은 단 1건도 없다. 이러다보니 이들 왕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하는 학자들의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있다. 보통 실존왕을 33대 여왕인 스이코왕부터 보는 경향이 있으나 더러는 40대인 천무왕 때로 보는 견해도 있으니 일왕의 역사나 계보는 석연치 않은 게 많다.

그것은 왕실에 대한 것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까닭은 왕실족보를 겨우 명치왕 때 이르러서야 정리했기 때문이기도하다. 실제로 내가 읽은 왕실가의 이야기 가운데 기억나는 것은 39대 홍문왕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홍문왕은 명치 3년(1870)까지 왕으로 인정을 못 받았는데 시골 면서기가 자기네 동네 뒷동산에서 홍문왕의 무덤과 비석을 발견하여 몇 번이나 명치정부에 민원편지를 넣어 겨우 39대 왕으로 인정받아 왕실족보에 오른 왕이다. 그러나 이런 비화는 소개하지 않은 채<歷代天皇, 新人物往來社,p249>에는 ‘명치 3년 홍문의 호가 주어지고 역대(왕)에 추가 되었다: 明治3年弘文の號が贈られ歷代に加えられた’라고만 쓰여 있다. 다른 왕들도 오십보백보이다.

지금이야 왕실 의전도 있고 전범(典範)도 있어서 품위있는 생활을 유지하지만 가마쿠라막부에게 권력을 넘겨준 1182년부터 1868년 명치정부가 정권을 잡기 전까지인 682년간 일본왕실은 막부의 찬밥신세였다.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정권을 쥔 조선의 경우에는 전 시대인 고려의  왕권을 청산하고 왕권강화를 꾀했지만 일본의 경우 막부권력은 왕실을 그대로 두는 대신 돌보지도 않아 심한 때는 왕실가의 장례 돈도 없을 만큼 곤궁해졌을 뿐 아니라 그 존재도 유명무실했다. 실제로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미륵(彌勒)이라든가 복덕(福德)같은 연호를 만들어 쓰는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백성은 왕실의 존재를 잊고 있었는데 이는 그만큼 왕의 권위가 실추된 증거라고 오카다(岡田芳朗) 교수는 말한다.

그러던 것이 막부타도 끝에 명치왕이 등장하면서 잃어버린 “왕실 되찾기”를 구실로 왕실족보정리, 왕실권력 강화, 왕실 신격화 따위로 확실한 왕실의 존재 구축을 위해 힘썼으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일본인들에게 일왕의 존재를 명확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차대전 패전 뒤 미국정부는 제국주의 침략의 근원이 천황제에 있음을 간파하여 천황제폐지를 검토하였으나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는 일본인들의 저항을 의식해 천황제 폐지를 반대하였다. 일왕은 최고통수권자로서 침략전쟁의 도발과 패전의 책임을 물어야 함에도 일본인들은 오히려 일왕이 군부세력에 이용당했다고 생각해 동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연합군사령부는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천황제는 유지하되 천황주권제를 폐지하고 정치적 실권 없이 상징천황제(일본국헌법)로 남게 한 것이다. 148살의 최장수 일왕을 내세워 역사의 빈 공백을 채우고 겨우 정권을 잡아 권력을 휘두르나 싶더니 다시 사무라이정권에 권력을 내주길 근 700여 년 그리고 근대에는 다시 전쟁으로 막강한 힘을 과시해보려다가 꺾여 상징적인 존재로 남은 일본왕의 역사는 알고 보면 파란만장하지만 그 역사적 뿌리는 깊지 않다.  


*일본한자는 구자체로 표기했습니다.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이윤옥(59yo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