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4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108. 일본어 가나문자와 한글 이야기

 


엊그제 10월 9일은 565돌 한글날이었다. 한글을 만든 지 이만한 세월이 흘렀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일본문자인 ‘가나문자’는 언제 생겼을까?

나는 종종 일본어 첫 걸음마 교실에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일본문자가 언제 만들어졌는가 하는 질문을 한다. 더러는 제대로 알고 답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대개는 묵묵부답이다. 그럴 때 나는 객관식으로 고르라고 다음과 같은 문항을 만든다.

①에도시대 ②메이지시대 ③가마쿠라시대 ④헤이안시대

4지 선다형이라고 답이 쉬운 것은 아니다. 어떤 학생들은 일본문자가 메이지시대에 만들어졌다고 답을 하는 학생도 있다. 메이지시대라면 1868년이다. 물론 정답은 헤이안시대(794-1192)이다.

한글처럼 만든 사람과 만든 날짜, 만든 목적이 뚜렷한 글자는 지구상에 없다. 영어도 그렇고 중국어, 일본어 또한 누가, 왜, 언제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한글날처럼 ‘가나의 날’이란 것이 있을 수 없다. 보통 가나의 출현을 10세기로 잡는다.

배우기도 어렵고 쓰기도 복잡한 한자는 일본인들에게 불편한 문자였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복잡한 한자의 획을 떼어버리고 편리한 부분만을 취해 둥글게 굴리기도 하고 눕히기도 하고 흘려 쓰기도 하여 만든 것이 오늘날의 일본문자인 가나이다.

가나(假名)란 마나(眞名)인 한자에 견주어 ‘임시적’ 또는 ‘제대로 된 것이 아닌’의 뜻을 지닌 것으로 가매장‘假埋葬’처럼 ‘假’자가 붙어 있다. 지금이야 일본이 훌륭한 문자로 여기고 있지만 ‘가나문자’가 만들어진 당시에는 ‘여자들이 쓰는 글’ 정도로 여겨져 남자들은 한자를 고집하기도 했다. 마치 우리 한글이 ‘암 클’이라 해서 천시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가나는 영어로 치면 필기체와 같은 ‘히라가나’가 있고 인쇄체 같은 ‘가타카나’가 있으며 각각 50자로 합하면 100자이다. (물론 현대어에서 안 쓰는 글자를 빼면 각각 48자)

처음 일본어에 입문하는 사람은 100자를 익혀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24자인 한글에 비해 숫자가 많은 것이 학습자에게는 큰 부담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글자 수는 많은데 표현 가능한 발음은 턱없이 부족하다. 일본인이 영어를 못하는 것은 바로 모음이 5개밖에 없는 데 기인한다. (반모음 3개가 있지만)

예컨대, 한국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의 “셰”는 물론이고 “쉐, 섀, 세, 쇄, 쇠” 같은 발음을 어렵지 않게 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세” 외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한다(?). 그래서 “세이크스피아”라고 한다. “마네(머니ㅡ돈), 갸르(걸, 소녀), 브라쟈(브라더, 형제), 맥도널드(마그도나르도)...”처럼  외래어발음은 정말 알아먹기 어렵다.

닿소리(자음)와 홀소리(모음)를 다양하게 조합하여 만들어지는 소리가 무려 11,172자나 되는 한글은 그래서 우수하다는 이야길 듣는다. 어려운 한자로 고생하는 백성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1446년 세상에 내놓은 한글은 남이 우수하다고 해서 우수한 게 아니다. 우리가 갈고 닦고 다듬을 때 더 빛나고 우수해지는 것이다. 눈만 뜨면 일본문자와 씨름하며 사는 나에게 한글은 그래서 더 돋보이고 매력적인 문자다.

그러나 요즈음 서울거리의 간판들이 앞다투어 영어로 바뀌어 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우리의 문자인 한글에 자긍심을 갖지 못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일본한자는 구자체로 표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