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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최을순 상신서









이이오겐시 씨가 쓴 “최을순 상신서”  




“재판관님. 저는 본국(한국)으로의 송환을 기다리며 오무라(大村) 입국자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주부입니다. 본적은 조선 경상남도 함안군이고, 이름은 최을순(30세)이라 합니다. 제가 귀국(일본)에 불법 입국하게 된 것은 쇼와(昭和 32년, 1957년) 5월 열여섯의 나이였을 때입니다. 일본에서 살아온 남편이나 저, 그리고 제 부모님이나 형제가 귀국과 연관된 것들에 대해 재판장님께서 제 이야기를 직접 들어주셨으면 하여, 반년 이상 살아온 수용소의 다다미방에서 썩 능숙하지는 않지만 일본어로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서른 살의 최을순은 세 살과 한 살짜리 아기엄마였다. 180여 일을 눅진 다다미방에서 강제 송환이라는 절차를 기다리며 오죽 답답했으면 재판관에게 자신의 심경을 써 내려갔을까? 최을순의 변론을 맡은 시미즈 변호사는 이런 사건을 전적으로 도맡다시피 한 변호사이다. 그의 책상에는 언제나 수북하게 이러한 사연이 쌓이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찡그리는 적이 없다.

“독(毒)도 약(藥)도 되지 않는 외국인은 모두 돌려보낼 생각이다. 그게 우리나라의 정책이니까. ‘외국인은 구워 먹든 삶아 먹든 자유’”라고 당당히 말하는 재판관에 대해 그는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질책한다. 그러면서 그는 “다이쇼(1912) 또는 쇼와(1925~) 초기에 태어난 지식 계층이라면 일본과 조선 사이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고 가슴에 새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마가사키(尼崎) 중앙 경찰서가 대외비로 관내 경찰에게 내린 훈령을 비판했다.

아마가사키(尼崎) 중앙 경찰서는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을 일부러 피하는 사람, 처자가 있으나 별거하고 있는 사람, 여관이나 호텔에 오랫동안 머무는 사람, 무선통신이나 그 외 특수 기술을 가진 사람, 남해안 부근을 배회하는 사람, 오사카 방면에 근무지가 있는 사람을 체포하라."는 훈령문을 내린 것이다. 이를 본 시미즈 변호사는 일본에서의 조선인 차별을 질책했다. 이러한 주제를 다룬 “최을순 상신서”를 쓴 소설가 이이오 (飯尾憲士, 1926 - 2004)씨는 계속해서 시미즈 변호사에게 배달된 편지를 소개하고 있다.

“소학생이었을 무렵, 조선어 사용을 금지당했고, 조선어를 쓰는 사람은 일본인 교사한테 흠씬 두들겨 맞았습니다. 매일 부동자세로 서서 ‘황국신민의 맹세’를 제창해야 했습니다. 쇼와 14년(1939년) ‘창씨개명’ 명령이 내려졌을 때, ‘일본인 이름으로 바꾸는 것은 조선인에게 있어서 최대의 명예다.’라는 말을 일본인 교사에게서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이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부모님은 매우 슬픈 표정을 지었습니다. 소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교사가 군대에 지원하라고 해서 시험을 보았더니 합격해버렸습니다. 그러자 제게 교사들은 ‘네가 드디어 천황 폐하의 아들이 되었구나!’ 하며 어깨를 두들겨 주었습니다. 그런 제가 30년 가까이 살아온 일본에서 이렇게 간단히 쫓겨나갈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

일제강점의 역사와 그로 말미암은 토지수탈, 강제연행, 징용 등으로 일본 땅에 건너간 동포들은 불평 한마디 하지 못하고 묵묵히 살아왔다. 그런 그들에게 들이댄 불법체류의 ‘엄격한 잣대’에 작가 이이오 씨는 시미즈 변호사를 통해 그 부당함을 조목조목 짚어 나간다.

이이오 작가 덕분에 패전 뒤 일본 내에 남게 된 재일조선인들의 애환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어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작품을 그 어떤 작가의 작품보다도 높이 사는 편이다.

이이오 씨의 아버지는 한일강제병합 뒤 19살에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 강기홍(1898)으로 규슈에서 지냈던 것으로 보아 탄광 일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이오 씨의 본명은 강수남(姜壽男)으로 이이오(飯尾)는 창씨개명이 아니라 일본인 어머니 성을 따른 것이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쓰는 사람들의 위대성은 시간이 더 흘러야 그 진가가 드러날 것이다.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이윤옥(59yo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