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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무연사회와 과잉연결시대







































엊그제 세미나가 있어 가니 초청강사 한 분이 파워포인트 자료로 특강을 하더군요. 맨 처음 비친 장면은 ‘과잉연결시대’의 화면이었습니다. 빨간 선이 얼키설키 둥근 원으로 그려져 있는 속에 인간이 갇혀 있더군요. 인터넷과 통신기기의 발달로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연결’이 인간 사이에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지요.

손말틀(휴대전화)은커녕 한 마을에 전화 한 대로 연결되던 시절이 불과 삼십여 년 전인 것을 기억하는 세대로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때 우리 동네에 전화기가 있던 집은 이장집뿐이었습니다. 지금처럼 버튼식이 아니라 손가락을 전화기 다이얼에 넣고 오른쪽으로 끝까지 돌리면 나사 풀리듯 디리릭 소리를 내며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고 그러면 다시 구멍에 손을 넣고 돌리는…. 박물관에나 가서 볼 수 있는 전화기를 쓸 때만 해도 과잉연결시대'라는 말을 상상도 못하던 시대였지요.

지난 성탄절 때도 그렇고 이번 새해 인사 역시 문자 메시지가 폭주까지는 아니지만 꽤 많이 들어왔는데 주로 보험회사와 슈퍼마켓, 서점, 심지어는 어디서 알았는지 아파트 분양회사까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기분이 썩 좋은 것도 아니라서 문자를 열어본 기분이 떨떠름합니다. 그런 판국에 나까지 '문자를 돌려?' 싶었으나 내게 들어온 정겨운 이름 몇 사람들을 기억하고 나도 그리운 이름들을 떠올리며 한번 좌악 돌려보았습니다. 삼분의 일이 바로 답이 오더군요.

아마도 과잉으로 들어오는 문자 탓에 자신도 그런 과잉을 부추기는 한 사람 일 것이라는 반성이 앞서서 문자를 누르려던 마음을 꾹 참은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먼저 용기를 내어 새해의 건강과 행운을 빌어 준 사람들의 마음이 과히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나도 용기를 내어 '과잉연결'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보내고 나니 마음도 후련하고 단 몇 줄이지만 소통을 한 느낌에 즐거웠습니다. 답까지 주고받은 사람들과는 더 친숙한 기분도 들었지요.

특강 강사는 '과잉연결시대'에 이어 '무연사회(無緣社會)'라는 화면을 보여 주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냈습니다. 이미 서구에서도 확산하고 있는 것이지만 강사는 이웃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습니다. 예전에 노인들은 자식들과 따로 살다가 부부 중 한 사람이 죽으면 자식들과 합하는 게 당연했지만 지금은 그대로 혼자 남아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추세를 소개하면서 이때부터 사실은 무연(無緣)의 생활이 시작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티브이 보다가 심심하면 구청에서 만든 각종 배우기 교실에 나가보기도 하지만 그 역시 시들하다 보면 집안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지요. 돈도 풍족하지 못한데다가 나이가 들면 자꾸 움직이는 것이 귀찮아 집안에 있게 되다 보니 밖의 세상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기계들의 발전이 눈부신데 안에서는 '무연고자(無緣故者)로 남게 되는 것이지요.

찾아가서 함께 놀아주진 못해도 기기 사용이라도 할 수 있다면 자식이나 손자들과도 소통이 될 텐데 그것도 안 되다 보니 혼자 쓸쓸히 지내다가 죽어가도 발견조차 늦게 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무연고자'를 위한 사업도 번창하고 있더군요. 보호자가 나타날 때까지 그의 유품을 창고에 보관해주는 것이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화면을 보여주면서 강사는 말합니다. '이것은 일본이야기지만 바로 한국이야기다.'라고 말입니다.

임진년 새해를 앞둔 시각 쏟아져 들어오는 문자들이 '과잉연결'이다 싶어 짜증이 나기보다는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행복함을 느껴보았습니다. 누리편지(이메일)나 문자의 주고받음도 오래도록 이어지다 보면 자식보다 낫고 오고감이 없는 아파트 옆집보다 나을 것입니다. 아무 이해타산 없이 새해의 건강과 기쁨을 나누려고 하는 그 마음은 '과잉'일지언정 행복한 일이며 '무연사회'를 몰아내기 위한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해서 나도 올해는 여러분께 밝아오는 동해의 해돋이를 넣은 새해인사를 문자로 날렸습니다. '과잉'이었다면 용서를 빌고 '유연(有緣)'이었다면 내년에도 계속 해볼 참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연사회'에 대한 자각과 퇴치를 위한 노력일 것입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주 작은 실천 방법 한 가지는 자식들과 사회와 소통이 될 수 있는 문명의 기기를 잘 다룰 줄 아는 방법입니다. 며칠 전 여권 사진 복사본을 받아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내가 할 줄 모르니 아들에게 부탁해서 찍어 보내주겠다는 주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씁쓸했습니다.

자식의존도가 높은 사람들은 '무연고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하버드 대학을 나오게 할수록 '무연고자'가 될 확률이 높지요. 자신의 성장이 멈춘 채 자식만 키우는 것은 짝사랑일 것입니다. 과거엔 자식만 잘되면 만사 오케였지만 이러한 전통사회의 미덕은 깨지고 있는지 오래입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구식 전화기를 쓰시는 분들은 새해도 밝았으니 구식 전화기를 버리고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라고 권해드립니다. 중학생 아들만도 못한 정보체계로 만족하지 말고 전화기 하나라도 어머니가 앞서가는 모델을 사서 자식이 물어오게 한다면 절대 '무연사회' 속에 떨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손말틀(휴대전화)만 해도 아버지들은 안 그런데 어머니들은 '아이구 지금 쓰는 것도 다 못쓴다.'라며 낡은 것들에 안주하려고 합니다. 기기만 갈아 치운다고 능사는 아니지만 적어도 변모하는 사회에 동참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그때 시대환경이 바뀌겠지만 젊은이들한테 안 팔려 공짜로 돌리는 그런 물건에 구미 당기지 말고 자신을 위해 당당히 투자하고 전화기 하나라도 자식들이 군침 흘리는 것을 사서 번듯하게 사용할 줄 아는 자세야말로 이웃나라 일본의 무연사회 공습을 피하는 길일지 모릅니다.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이윤옥(59yo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