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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일본 입학ㆍ졸업식장에서 일장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슬슬 한국은 각 급 학교의 졸업철이다. 졸업식장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 제창은 학창시절의 마지막 추억이 될지 몰라서인지 식장의 애국가 제창은 여느 때보다 우렁차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의 졸업식장 풍경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졸업식장에서 기미가요(국가,國歌)를 부르느니 못 부르느니 문제로 졸업과 입학 때만 되면 시끄럽다. 더불어 히노마루(국기, 國旗)에 대해서도 경례를 못하겠다고 버티는 교사와 학생들이 속출하고 있다. 대관절 무슨 곡절인가!
 
2008년 오사카 시립중학교 졸업식장에서 일어난 국기, 국가 제창 거부 사건은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당시 졸업생 160명 중 159명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했으니 교장 선생의 붉으락푸르락하던 모습은 애써 떠올리지 않아도 상상이 갈 것이다. 이날 졸업식 후에 교장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다. 당장 3학년 담임 5명과 부담임 3명이 시교육위원회에 ‘문제교사’로 고발되었다.
 
오사카 시립중학교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는 교사와 학생들의 집단 ‘국기(國旗)·국가(國歌) 거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데 특히 1999년 (평성 11년) 8월 13일 국기국가법(国旗国歌法)이 공포되면서 확산되어 가는 추세이다. 히노마루(국기)와 기미가요(국가) 거부자들은 “헌법 19조의 사상, 양심의 자유에 위반되며 1947년 교육기본법 10조의 ‘부당한 지배 금지’에 위반된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고수파들은 결코 위반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는 일본 내에 팽팽한 세력이 대립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지만 대세는 “신성한 국기(國旗)·국가(國歌) 거부는 있을 수 없는 일, 거부자는 모두 처벌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이고 실질적으로 법원은 그러한 엄벌 위주의 판결을 지속해왔다.
 
처벌의 최고단계는 퇴직이다. 그 아래 단계가 정직(停職) 그리고 감급 (월급을 줄이는 ‘減給’) 순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불복하는 교사들의 소송도 줄을 이었다. 1999년 4월 도쿄도 히노시(日野市)의 한 시립소학교 입학식에서 기미가요 피아노 연주를 거부한 음악교사가 징계처분을 받았는데 이 교사는 즉시 징계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8년간을 끈 이 사건은 그러나 2007년 2월 27일 최고재판소판결(最高裁判所判決)에서 교사의 패소로 끝이 났다.
 
그로부터 세월이 5년 흐른 지난 2012년 1월 16일 ‘국기(國旗)·국가(國歌) 거부’에 대한 3건의 소송에 대한 최고재판소의 판결이 있었다. 그러나 5년 전과 다소 다른 변화가 엿보였다. 기본 골자는 “이들 거부자에 대해 처벌을 하겠다는 뜻이지만 그 처벌은 어디까지나 훈계나 주의가 적절하며 징계까지 하는 것은 심하다. 징계는 신중히 해야 할 것”이라는 견해에 시선이 모였다. (재판관 5명 중 미야가와(宮川光治) 재판관 외 4명의 의견) 이는 과거의 엄벌 위주에서 약간 누그러진 입장임을 읽을 수 있으나 해당 교사들과 기미가요 거부자들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한 판결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일본인이 아닌 제삼자로서 나는 기미가요 거부 문제를 단순한 ‘사상과 양심의 자유’의 표출만으로는 보지 않는다. 그것의 근본 뿌리는 군국주의라고 본다. 광기에 나부끼던 일장기 아래서 행해진 군국주의의 무서운 횡포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인은 물론이요, 태평양 전쟁으로 말미암은 수많은 사람의 살상을 가져왔다. 물론 일본도 피해를 면하지 못했다. 가해자이면서 가장 큰 피해국이었으니 말이다.
 
군국주의 아래서 죽어갔던 수많은 일본인의 어이없는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자라나는 세대를 키우고 싶은 양심 있는 일본인들은 히노마루에 대해 일종의 알레르기를 보인다. 히노마루(일장기)=군국주의 망령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히노마루 거부 행동은 다시 고개 들려고 하는 악랄한 군국주의에 대한 경계이며 평화를 지향하고자 하는 양심 있는 일본인들의 작은 저항이라고 나는 본다.
 
남의 나랏일이지만 군국주의 횡포를 당한 이웃나라 사람으로서 2012년 1월 16일 최고재판소의 다소 누그러진 판결에 나는 작은 희망의 불씨를 보았다. 그것은 히노마루(일장기) 거부행위를 단순한 ‘헝겊에 새겨진 빨간 동그라미’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읽어주는 4명의 재판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히노마루=군국주의가 아니라 히노마루=세계평화의 상징으로 인식한다면 일본 안에서의 끊임없는 ‘일장기 거부’ 행동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졸업, 입학 시즌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