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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일본이 약탈해간 조선문화재 (1)
















 





 

<일본에 있는 조선문화재(日本にある朝鮮文化財)> (1)




동경 우에노공원(上野恩賜公園) 안에 있는 동경국립박물관은 일본 최고(最古)이자 최대 박물관이다. 본관, 동양관, 법륭사보물관 등 5개의 전시관과 자료관을 갖춘 곳으로 소장품 수만도 11만 건을 넘으며 국보 87건, 중요문화재 622건(2009. 3. 31 현재)을 보유하고 있다.

이곳에 한반도에서 약탈한 오구라콜렉션이 자리하는데 총 1,111점이 전시되고 있다. 오구라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1870-1964)는 1903년에 조선에 건너와 대구에서 전기사업권과 금융업으로 일약 부자가 된 이래 조선의 문화재 수집에 열을 올렸다. 그는 도굴품도 개의치 않고 사들인 사람인데 그의 광적인 유물 수집은 도굴꾼과 꿍짝이 맞아 소중한 가야 시대 고분이 마구잡이로 파헤쳐지는 불행을 만들었다.

오구라는 하나 둘 손에 거머쥔 문화재가 값나가는 것이라는 평을 듣자 그 야심을 조선 전역에 뻗치게 되는데 정당하게 문화재를 입수하지 못할 때는 협박과 공갈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금속문화재 수집가로 알려진 김동현 씨는 오구라의 공갈과 협박을 무릅쓰면서 우리의 문화재를 고집스럽게 지켰는데 그가 지킨 문화재는 지금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평양에서 화천당 골동품가게를 하던 김동현 씨는 어느 날 작업복 차림의 허름한 옷을 입은 한국인이 보자기에 불상을 하나 싸가지고 와서 “기왓장 벽돌 사이에 이 불상이 있었다. 녹도 많이 슬고 손도 떨어져 나가 그냥 버릴까 하다가 가져왔다.”라고 펼쳐보이는 흙 범벅된 불상을 본 순간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훗날 국보 118호로 지정된 금동반가사유상이었다. 그는 잽싸게 불상을 감추고는 왜놈이 빼앗아 갈 것을 염려하여 입을 다물게 했다.

그리고는 당시 기와집 3채 값인 6천 원을 계산해 주었다. 그러나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대구에 거주하던 오구라는 평양까지 단걸음에 달려와 요릿집으로 김동현 씨를 불러냈다. 오구라는 당시 기와집 250채 값인 50만 원을 제시 했지만 김동현 씨는 눈도 깜짝 안 했다. 그렇게 지킨 금동반가사유상은 1944년 평양 평천리에서 나온 것으로 그간 신라와 백제에서만 만든 것으로 알려진 미륵상이 고구려에서도 만들어졌음을 알린 중요한 국보였던 것이다.

김동현 씨가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오구라는 이튿날 김동현 씨 골동품점에 찾아가 협박을 했지만 그는 끝내 이 불상을 지켜냈다. 한편, 오구라는 게걸스럽게 사들인 문화재를 부지런히 동경의 저택으로 나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일부 문화재를 포기하고 일본으로 귀국하게 된다. 그가 대구에 남기고 간 문화재는 1946년 대한민국 정부에 귀속하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게 되는데 모두 670점이다.

또한, 1964년에는 오구라가 살던 대구의 저택 지하실에서 142점의 문화재가 발견되었다. 그때 찾은 문화재는 현재 경주박물관에 있다. 따라서 오구라가 공갈과 협박과 헐값으로 긁어모은 조선의 국보급 문화재는 이 142점을 비롯하여 동경박물관에 1,111점, 서울 중앙국립박물관에 670점으로 모두 1,923점이나 된다.

국보급 문화재 2천여 점을 혼자 주물렀다는 사실에 그저 기가 질릴 뿐이다. 현재 동경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오구라콜렉션의 구체적인 유물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다음 주에 소개하겠다.

- 다음 주 2회에서 공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