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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벚꽃놀이는 있고 무궁화꽃놀이는 없다


사쿠라(벚꽃)가 온 나라에 지천이다. 그 꽃을 보고 즐기는 말이 한국에서도 보통명사화 된지 오래인데 이름하여 벚꽃(사쿠라)놀이이다. 일본에서는 사쿠라를 보고 즐기는 것을 하나미(花見)라고 한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꽃보기’이다. 하나미(花見) 속에 벚꽃이란 말이 들어가지 않지만 하나미라고 하면 봄철 벚꽃놀이를 가리킨다.

벚꽃이 나라꽃(가을에 피는 국화는 천황가의 문양)인 일본사람들은 이 꽃이 피길 기다려 색색의 하나미벤토(벚꽃놀이 도시락)을 싸들고 사쿠라 나무 밑으로 몰려든다. 삼삼오오 가족단위 또는 회사 동료끼리 모여 도시락을 나누고 맥주를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은 일본인의 연례행사 중 으뜸으로 꼽힌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꽃놀이 풍습은 나라시대(710-794)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귀족들의 꽃놀이 행사였는데 당시에는 주로 매화꽃놀이였다가 헤이안시대(794-1192)에는 서서히 벚꽃으로 바뀐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의 최고가집(最古歌集)인 만엽집(万葉集)에 벚꽃을 읊은 노래가 40수 (매화는 100수)나오다가 헤이안시대의 작품인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에서는 이 숫자가 역전된다. 따라서 헤이안시대부터 하나미(花見)란 거의 벚꽃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으며 이런 점에서 일본의 벚꽃놀이는 1천여 년도 더 된 오래된 풍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한국은 고려시대의 문장가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 17권에 “(전략)조정에서 물러나와 문득 같이 와서는 / 옷 벗고 함께 앉아 다리 뻗고 놀았네 / 벚꽃 피는 계절에 항상 단술 베푸니(후략)”라는 시가 있는데 여기에 벚꽃이 나온다. 하지만, 일본처럼 벚꽃을 즐기고 놀았다는 이야기는 없고 벚꽃 피는 계절 곧 봄을 묘사하는데 그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옛 시에서 벚꽃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일본의 벚꽃놀이 풍습이 한국에 들어와 자리 잡은 것은 아무래도 일제강점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1927년 3월 28일 자 동아일보의 “창경원 밤 벚꽃놀이(夜櫻)” 기사를 시작으로 한국의 벚꽃놀이 기사는 봇물이 터지듯 한다. 일제는 신성한 궁궐을 훼손하고 그 자리에 동물들의 똥오줌냄새를 풍기는 동물원을 만들고 사쿠라나무를 대대적으로 심게 되는데 철없는 한국인들은 좋아라 하고 ‘창경원 벚꽃놀이’에 줄을 섰던 것이다.

이후 한국인의 벚꽃 사랑은 온 나라로 번져나가 천년고도 경주를 비롯하여 국회의사당 주변에도 잔뜩 심어 해마다 여의도 벚꽃놀이를 생중계하는가 하면 이순신의 후예가 군사훈련을 하는 진해 해군기지 주변에도 벚꽃을 심어 해마다 빼놓지 않고 벚꽃놀이 소식을 전국으로 타전하고 있다.

반면에 나라꽃인 무궁화는 ‘무궁화꽃놀이’라는 말은커녕 꽃나무조차도 대한민국 그 어느 곳에서도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렵다. 일설에는 무궁화가 진딧물이 많이 낀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라면 나무 전공하는 사람들은 다 어디 갔단 말인가!

일본 츠쿠바시에는 무궁화가 공해에 좋은 나무라 하여 도심 곳곳에 가로수처럼 심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한국도 강원도 홍천에 가면 '무궁화의 메카 홍천’이라는 펼침막이나 선간판은 많이 눈에 띄지만 정작 무궁화는 국도변에 말라비틀어지거나 변변치 않은 묘목 조금이 고작이다.

어떤 이들은 나의 이러한 이야기에 핏대를 세울지 모르겠다. 왜 애꿎은 꽃을 가지고 그러냐고 말이다. 나도 꽃만큼은 건들고 싶지 않지만 꽃이건 종이건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어 하는 말이다. 여기서 '종이'란 일본의 천주교 박해 때 예수 그림을 바닥에 깔아 놓고는 밟고 지나가도록 해서 밟고 지나가지 않는 사람들을 사형에 처한 끔찍한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한 '종이그림'의 상징성을 기억해내야 할 것이다. 일명 후미에(踏み繪)사건이다.

사물과 사안(事案)의 상징성을 잘 모르는 순진한 사람들은 하기 좋은 말로 그 잘난 '예수 그림'이 뭐가 대수란 말인가 할 사람도 나올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때의 종이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종이가 내포하는 상징성이 어마어마하듯 조선천지를 물들이는 사쿠라(벚꽃)의 상징성 또한 작지 않다.

꽃을 좋아한다면 우리의 좋은 꽃들이 얼마든지 있다. 무궁화꽃도 있고 김소월의 진달래도 있다. 봄이면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복사꽃도 좋다. 매화와 개나리는 또 어떤가? 2주 피었다가 사라지는 벚꽃 말고 오래 피는 우리의 꽃들을 사방에 심어 즐길 생각을 하는 한국인은 정말 영영 나오지 않을 것인가? 꽃의 계절 봄철만 되면 꽃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