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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7. 정간보(井間譜)는 쉽게 읽을 수 있는 고유의 유량악보

 


 
 


지난주까지 율자보와 공척보, 악기의 소리를 흉내 낸 육보, 거문고나 비파의 악보로 율명(음이름)을 쓰지 않고 여러 개의 글자를 합해 놓은 합자보, 세조시대에 창안한 기보방법으로 5음으로 줄여 쓴다는 의미의 약보, 성악곡의 가락이나 창법을 잊지 않으려고 기호를 써 온 연음표의 이야기를 주로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보법들은 부호 자체가 음높이를 지니고 있지 않고 박자의 표시가 없어서 악곡의 빠르고 느린 박자를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단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기존의 불편하거나 불합리한 점을 한꺼번에 해결한 기보방법이 바로 정간보(井間譜))보라는 것이다. 정간보는 조선조 세종임금 때 창안된 기보방법이다. 정간보의 정(井)은 우물을 의미하는 글자이다. 마치 원고지처럼 상하좌우의 네모 간을 만들고 그 안에 12율명의 첫 글자만을 적어 넣는다. 이 악보는 무엇보다도 음의 길이, 즉 음가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조선조 세종시대의 음악이 지금까지 전해올 수 있었던 배경도 정간보 덕분이고 궁중음악 대부분이 정간보로 기록되어 온 점이나, 정리 채보 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국립국악원을 비롯하여 음악기관이나 연주 및 연구단체, 국악전공의 중, 고등학교, 대학의 국악과 등 교육기관에서 폭넓게 정간보를 사용하고 있는 점으로도 이 기보법의 중요성은 더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하겠다.

구전심수로 전해오는 일부의 음악을 예외로 한다면 국악곡을 읽고 쓰는 일이나 배우고 가르치는 여러 가지 활동도 실상은 정간보를 떠나서는 불가한 것이다. 간혹 정간악보를 정확하게 모르면서 서양의 5선보를 빌려쓰는 예가 있다. 대부분 학습자는 악곡 본래의 참맛을 느끼기 어렵다고 실토한다. 그러므로 국악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정간보의 독해는 필수의 과정인 셈이다.

음의 높고 낮음을 구별하고자 5선을 만들고 그 위에 길고 짧은 음들과 높고 낮은음들을 기호로 만들어 배열하는 서양의 5선 기보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정간 기보법은 다소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정간보를 읽고 쓰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기 때문에 곧 익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속풀이에서 신국악 <무궁화(無窮花)>를 작곡한 바 있는 미국의 작곡가 루 해리슨(Lou Harrison)을 소개하면서 그가 정간악보로 피리 배우기를 고집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1960년대 초, 한국의 전통음악을 연구하려고 내한했던 음악가였는데, 국립국악원에 와서 김태섭 선생에게 정악피리를 배우기도 했던 사람이다.

필자는 선생의 조교 역할을 하면서 선생의 방법과는 달리 그가 외국인이고 하여 정간보를 5선악보로 역보해 주고 가르침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의 이 특별 배려와는 달리 그의 반응은 시큰둥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분명하게 한국의 전통음악은 한국의 전통적 기보법인 정간보로 배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필자는 그때 그가 의아해하던 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다. 미국으로 되돌아간 그는 국립국악원의 위촉곡으로 “새국악 무궁화”라는 곡을 정간악보로 작곡하여 보내와 우리를 놀라게 했던 것이다.

정간보는 간편한 악보다. 몇 가지 기본적인 원칙만 익힌다면 매우 쉬운 악보인 것이다. 정간보는 위에서 아래로 읽어 나가는 악보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 나가는 5선 악보와는 대조를 보인다. 또한, 오른쪽 첫째 줄이 제1행이고 왼쪽으로 제2행, 제3행, 제4행의 순서대로 읽어나간다. 이것도 윗단에서 아랫단으로 읽어 나가는 5선의 기보 체계와는 다르다.

위에서부터 맨 아래 정간까지의 1줄을 <1행> 또는 <1각>이라고도 하고 <첫째 장단>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그러므로 세로로 이루어진 한 단위의 줄은 <행>이나 <각>을 쓰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첫째 장단>, <둘째 장단>이라고 부른다.

한 장단을 이루는 정간의 수는 악곡에 따라 느리고 긴 악곡은 20 정간도 있고 ‘가곡’과 같은 음악은 16 정간이며 ‘취타’는 12 정간, 그리고 악곡에 따라 10 정간, 8 정간, 6 정간이 대부분이고 제일 빠른 악곡인 ‘양청도드리’는 4 정간으로 되어 있다.

정간악보의 1 정간은 1박이다. 그러므로 2 정간은 2박이 되고 3 정간은 3박이 된다. 또한, 1박 내에서의 1/2박, 1/3박, 1/4박, 1/5박, 1/6박 등의 기보는 아래의 <보례>처럼 표기된 율명의 위치에 따라 정해지고 그 순서대로 읽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