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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사랑한 아사카와다쿠미의 삶을 그린 영화"백자의 사람"을 보고...



















개봉된다면 가족들과 한번 가서 보셔도 좋을 영화입니다. (7월12일개봉)

남을 이해하고 역사를 이해하는 일은 

우리  삶의 가장 큰 중심에 둘 일이라고 봅니다. 바쁠수록..................

아래 글은 인터넷신문 <대자보> 2012년 7월 2일자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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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을 아십니까?
[시사회] 조선을 사랑한 아사카와다쿠미의 삶을 그린 영화 “백자의 사람”
 

이윤옥
조선을 사랑한 아사카와다쿠미(浅川巧, 1891.1.15-1931.4.2)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농상공부산림과(朝鮮総督府農商工部山林課)에 직원으로 고용되어 24살 때인 1914년 5월 경성에 첫발을 디딘 이래 급성폐렴으로 40살의 나이로 숨지기까지 16년간 조선에서 살다간 일본인이다. 그 조선 사랑의 삶을 다룬 영화 “백자의 사람”이 오는 7월 12일 개봉된다.













▲ 영화 <백자의 사람> 전단(왼쪽), 아사카와다쿠미의 생전 모습 © 날개(주)

아사카와다쿠미가 평범한 임업시험소 직원으로 살다 갔다면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물론 영화나 소설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의 흰 바지저고리를 입고 순백의 백자를 사랑하다 조선땅에 묻힌 아사카와다쿠미의 삶을 그린 “백자의 사람” 영화 시사회가 지난 6월 28일 건대 입구 롯데시네마에서 있어 다녀왔다.

당시 식민지 조선에 관리로 건너온 일본인들은 혼란한 정세에 조선인이 미처 챙기지 못하던 청자며 백자 같은 값나가는 골동품과 서화 등을 게걸스럽게 수집했는데 그중에는 국보급도 수두룩하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골동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진실로 예술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예술품을 만든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아사카와다쿠미가 한국인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까닭은 그가 조선백자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백자의 나라와 그 사람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아사카와다쿠미를 다룬 영화 7월 12일 개봉













▲ 아사카와다쿠미와 조선인 동료 이청림이 조선의 산과 나무를 둘러본다.(영화 장면) © 날개(주)

영화가 시작되자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일본 야마나시현의 한 평화로운 산골에서 아사카와 다쿠미는 친구와 조선행을 두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는 자신의 고향 야마나시의 흙과 나무를 사랑했는데 이미 조선에 건너와 자리를 잡은 형 노리다카 (浅川伯教,1884-1964)로부터 조선에 건너오라는 권유를 받게 된 것이다.

영화의 원작은 아사카와다쿠미와 같은 야마나시 출신의 역사소설가가 쓴 에미야타카유키(江宮隆之, 1948~)의 “백자의 사람(白磁の人)”으로 감독은 다카하시반메이(高橋伴明)이다. 주인공 역은 뛰어난 한국어 실력을 보여주면서 실존인물 다쿠미 역을 잘 소화해낸 요시자와 히사시(吉沢悠)가 맡았고 다쿠미의 한국인 동료로 나오는 이청림 역은 배수빈이 맡아 민족의 벽을 넘어 진한 우정을 나누는 따뜻한 성품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주인공는 총독부 소속 임업시험장의 말단 관리로 조선에 건너와 제국주의 일본의 횡포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면서 차츰 조선인의 역사와 삶에 관심을 갖게 된다. 조선인을 이해하려고 조선말을 익히고 조선옷을 입으며 박봉을 쪼개 조선인을 돕는 장면들이 관객의 닫힌 마음을 열어 놓는 느낌이다.













▲ 조선밥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접이 백자임을 알고 놀라는 다쿠미(영화 장면) © 날개(주)

아사카와다쿠미가 목격한 조선인의 3·1 만세운동과 이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대어 붉은 선혈을 낭자하게 흘리게 한 제국주의 일본의 잔혹함은 그가 조선인을 사랑하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제국주의 일본의 조선탄압이 끝나길 바라는 뜻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가 쓴 책 《조선의 밥상》 마지막에 “중요한 것을 잃지 않으면 곧 자신이 생기는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은 또 공예의 길 뿐만은 아니다.”라는 말이 그것인데 당시 총독부의 검열을 의식한 말치고는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죽어도 조선에 있을 것이오. 그리고 조선식으로 장사를 지내주시오.”라는 유언을 할 정도로 철저한 조선인으로 남고자 했던 다쿠미의 장례식날은 이웃의 조선인들이 서로 상여를 메겠다며 다툴 정도였으며 지금도 망우리에 있는 그의 무덤은 아사카와다쿠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보살펴지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든 나라현 출신의 다카하시반메이 감독은 72년 데뷔 이후 50편의 핑크영화 연출과 <히비>, <젠>, <박스 하카마다서건> 등 시대를 가르는 화제작을 속속 발표한 중진 감독이다. 그는 <백자의 사람 : 조선의 흙이 되다>를 통해 식민지 시대의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 놓인 두꺼운 벽을 어느 한 쪽에 치우침 없이 그려내려고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반메이 감독이 말한 두 나라 사이의 벽이 얼마만큼 허물어졌는지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리라.

시사회가 끝나고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 자막으로 모두 끝날 때까지 관객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으며 객석에서는 종종 흐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관객들은 화면이 다 꺼지고 극장 안의 조명이 켜지도록 자리를 뜨지 않았다. 무거운 주제이면서도 무어라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아련한 여운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 아사카와다쿠미 역의 일본배우 요시자와히사시 그리고 이청림 역의 배수빈 © 날개(주)
이 영화 한 편으로 면죄부는 안돼

이날 시사회에 참석했던 윤조자 (명지전문대학 교환교수, 재일교포 3세) 씨는 눈시울을 붉히면서 “인간이 한 사람을 만나 그 사람에 감동하고 심적인 변화를 보이는 것에 놀라움을 느꼈다. ‘나무를 심는 목적이 가구나 선로를 놓는 일 외에 또 있냐?’라고 빈정대던 상사가 아사카와다쿠미의 ‘조선의 산을 푸르게 하고 싶은 꿈’을 이루는데 앞장서고 또 ‘조선인은 장례식 따위에서 큰 소리로 울어 꼴불견이다.’라는 시선을 시종일관 보이던 어머니조차도 끝내는 그것이 '인간의 솔직한 감정'이란 점을 이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아사카와다쿠미가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저항하던 모습이며 그러한 저항정신은 조선 청년 이청림을 통해 가능한 것임을 알았다."라고 했다.

또 작가 도다이쿠코(戶田郁子) 씨는 “<백자의 사람>을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관심이 컸다. 그래서 어떤 영화일까 하고 기대 반 걱정 반이 교차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일제강점기 조선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에 다가서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돋보였고 아사카와다쿠미라는 인간의 소박함이 잘 표현되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내 마음은 따뜻함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아사카와다쿠미의 존재 덕분에 일본인이 <면죄부>를 얻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자신이 어떻게 이웃(나라)과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소감을 말한다.

개포동에서 온 역사 교사 이상현 씨는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아픈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일본인 가운데 좋은 사람이 있어도 선뜻 마음이 열리질 않는다. 2·8 동경유학생의 변론을 맡아준 일본의 인권 변호사 후세다츠지 씨라든가 나가사키에서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주장한 오카마사하루 목사 등도 아사카와다쿠미 못지않은 분들이다. 이 영화를 계기로 우리는 일본의 흉악한 제국주의자, 극우분자들과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들을 구분하는 분명한 획을 그었으면 한다.

또한, 모처럼 한일우호를 위해 만든 영화를 통해 양국 사람들이 평화를 위한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제작진들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자칫 한 사람의 영웅 만들기로 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 어떠한 경우에도 아사카와다쿠미가 살다간 시대에 벌어진 일제의 핍박과 압제의 쇠사슬이 두 청년의 우정이라는 테마 속에 은근슬쩍 가려지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최근 도쿄 니콘살롱에서 6월 26일부터 개최 예정이던 재일 사진작가 안세홍 씨의 종군위안부 사진전이 돌연 취소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재개되었는가 하면 또 며칠 전에는 일본의 극우분자가 한국의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소녀상에 “다케시마는 일본땅”이라는 말뚝을 박아 전 국민의 분노를 사게 한 일이 있었다. 이러한 일들은 평화를 사랑하고 한일 양국 간의 발전적인 미래를 염원하는 양심 있는 두 나라 시민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으로 많은 사람이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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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흙이 되려 했던 아사카와다쿠미는 서울 망우리공원묘지에 잠들어 있다 (사진 필자) © 이윤옥

올해로 아사카와다쿠미가 죽은 지 81년째를 맞이한다. 얼마 전 필자는 그의 망우리 무덤을 찾았다.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라는 구절의 돌비석이 아담한 그의 무덤가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고 주변에는 붉은 산딸기가 예쁘게 피어 있었다.

영화 <조선의 흙이 되다: 백자의 사람>은 이미 6월 9일 일본에서 개봉되어 지금 전국에서 상영 중이지만 한국에서는 지난 6월 28일 시사회를 시작으로 7월 1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한 편의 영화가 한일 간 맺힌 35년 식민지 역사의 앙금을 가셔 내고 두 나라 사이의 벽을 허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아사카와다쿠미 같은 아름다운 영혼의 일본인이 식민지 조선의 역사 속에 있었다는 사실과 아울러 그가 단순히 백자를 좋아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온몸으로 조선을 사랑하다 조선땅에 묻힌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 있다고 본다. 선입견 없이 본다면 한일 양국의 미래에 작은 민들레 홀씨를 키우는 일이 될 것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