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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발해사신이 묵었던 교토 홍로관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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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성국이라 일컫던 발해(渤海, 698년 ~ 926년)는 고구려를 계승하여, 229년간 한반도 북부와 만주 동부 및 연해주에 걸친 광범위한 지역을 호령하던 나라로 뛰어난 문화 국가였다. 발해는 당나라와 친선 관계를 맺고 일본과는 200여 년간 교류를 하였으며 신라와 당나라를 견제하여 동북아시아에서 세력 균형을 유지하였으나 끝내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멸망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발해의 유적은 지금 일본 곳곳에 남아 있다. 불가마를 연상하는 뜨거운 7월 중순, 교토의 자그마한 역 단바구치역(丹波口)에서 어렵사리 찾았던 발해유적지 홍로관터를 돌아 보고 와서 발해사를 뒤져보느라 이제야 글을 쓴다.

발해 사신들이 묵었던 교토의 홍로관(코로칸)을 찾아 나선 것은 지난 7월 중순이었다. 교토시내 단바구치역 근처에 있던 홍로관은 지금은 홍로관터였음을 알리는 작은 돌비석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홍로관터 옆에는 제법 근사한 일본의 전통건물이 서있었는데 먼발치에서 이 건물이 홍로관인 줄 알고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가보니 이곳은 요즈음으로 말하면 요정(角室, 스미야)으로 에도시대인 1641년에 세워져 현재는 교토시의 중요문화재이다. 그 건물 끝 모퉁이에 홍로관터 돌비석은 초라하게 서있었다.

일본에는 당시 발해사절들의 숙소였던 홍로관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1천여 년 전 발해와 일본의 교류를 가늠케 하는 중요한 사적지로 한번쯤 발걸음을 해도 좋은 곳이다. 홍로관 유적은 현재 일본에 세 곳이 남아 있는데 후쿠오카(福岡市中央城內)와 오사카(大阪市中央高麗橋近)그리고 교토 유적이 그것이다.

후쿠오카의 경우에는 홍로관 건물터 유구(遺構)가 발견되어 현재는 홍로관터 전시관이 들어서있고 오사카의 경우에는 현재 홍로관터 표시조차 없지만 서기 844년에 오사카 난바(難波)에 있던 홍로관이 당시 관청(津政)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발해사절단은 보통 100여명으로 구성 되었는데 이 사절단 속에는 상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발해에서 일본으로 들어가는 품목은 주로 담비가죽, 불곰가죽, 호랑이가죽과 같은 모피와 조선인삼, 꿀 등이었고 일본에서 발해로 건너간 품목은 비단, 면(綿) 등 이었다.

지금 사람들도 해외명품이라면 사족을 못 쓰듯 당시 헤이안귀족들 사이에서 모피는 대단한 인기품목으로 이에 대한 재미난 일화가 있다. 서기919년에 제34회 발해사절 배구(裵)가 갔을 때의 일이다. 5월12일 연회가 베풀어졌는데 연회장에는 다이고왕의 왕자인 시게아키라(重明親王)가 검은담비 가죽옷 8벌을 껴입고 나와 배구일행을 놀라게 했다는 일화가 ≪대일본사, 重明親傳≫에 있다. 당시 5월 2일은 양력으로는 6월 7일로 무더운 여름에 해당된다. 예나 지금이나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인가 보다. 지금은 사라진 나라 발해의 사신들이 묵었던 홍로관 터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희뿌연 하늘을 올려다본다.  - 이어지는 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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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토 동홍로관터 기사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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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한자는 구자체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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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이윤옥(59yo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