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김영조문화전문기자] 조선 최고의 성군 세종임금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그 뜻을 다음과 같이 만천하에 선포한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못한다.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 싶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엾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하고자 한다.” 세종이 최고의 성군이라 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것은 이러한 백성사랑의 마음 때문이리라. 그 성군 세종이 봄밤에 우리의 곁으로 내려온 듯 했다. 지난 4월 26일 저녁 7시 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세종국악관현악단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으로 세종국악관현악단 제58회 정기연주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국악관현악단”이란 우리의 음악을 서양의 관현악단 곧 오케스트라(orchestra) 형식에 맞춰 표현하는 음악단체를 말함이다. 그 국악관현악단을 대표하는 것은 물론 국립국악관현악단, KBS국악관현악단,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등이지만 광주, 부산, 제주 같은 지자체가 만든 국악관현악단과 청소년국악관현악단, 어린이국악관현악단 등이 있다. 그러나 민간 국악관현악단은 중앙국악관현악단, 백제국악관현악단 같은 많지 않은 숫자가 있을 뿐이다. 민간 국악관현악단 수가 적은 것은 최소 수십여 명의 단원들을 이끌어야 하기에 절대적으로 어려운 재정 문제에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1992년 창단하여 벌써 21년째 58회 정기연주회를 해내는 <세종국악관현악단>이야말로 대한민국이 큰 손뼉을 쳐주어야 마땅한 관현악단이다. 그래서일까? 예악당은 국악애호가들로 자리가 꽉 메워졌다.
공연은 먼저 창단 20돌 기념으로 작곡한 창작관현악곡 ‘뿌리 깊은 나무‘이다. 용비어천가의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뽑히지 않아서 꽃이 좋고 열매가 많으며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않아 내가 되어 바다로 가노니”를 생각하면서 박호성 단장이 작곡한 음악이다. 연주에는 국악기는 물론 플루트, 바순, 첼로처럼 국악기와는 물과 기름으로 생각될 서양 악기들도 등장했는데 이를 조화롭게 하나로 만드는 지휘자의 천부적 능력과 열정이 음악 속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연주 내내 청중에게 뿌리 곧 근본을 생각하게 하는 장중한 선율이 펼쳐졌다. 이어서 현재 활동하는 해금 연주자 중 많은 팬을 몰고 다니는 강은일 서울예술대학교 교수의 해금을 위한 협주곡 “바람꽃”이다. 역시 그녀는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그러다가도 느닷없이 흐느끼는 듯한 신들린 연주에 객석은 숨을 죽인다. 강은일이 연주하는 것은 분명 “바람꽃”인데 청중이 “꽃바람”을 맞은 듯 몽롱하다. 해금의 아름다운 선율이 지나가자 이번엔 부산대학교 김남순 교수의 25현가야금을 위한 국악관현악 “절영의 전설” 차례다. 자신의 그림자를 남기지 않고 달리는 것이 ‘절영’이라나? 가야금과 관현악의 대화가 참으로 정갈하다. 아니 힘 있고 개성 있는 그리고 화려한 연주를 관현악이 따뜻하게 감싸주고 있다. 김남순 교수의 가야금을 타는 손가락이 신비스럽게만 느껴진다. 10분의 쉼을 끝내고 이어진 곡은 새로움을 위한 창작관현악 “청룡아리랑”이다. 저 깊은 심연에서 퍼 올리는 대아쟁의 장중한 숨소리와 화려한 가야금의 하모니가 아름답다. 또한 간간이 들리는 플루트와 바순의 추임새 역시 듣는 이를 매료시켰다. 그리고 이날 연주곡 가운데 사람의 소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청장격려(淸壯激勵)”가 있었는데 음악이 시작된 뒤 무대에 나오는 소리꾼은 국악가요의 미성을 뽐낸다. 저래서 국악가요를 서양성악과 국악성악을 아우르는 절묘한 소리라고 하던가? 다만 소리꾼 일부는 약간 거슬리는 고음이 지나쳐 아쉬움을 주었다. 하지만, 소리꾼 다섯이 함께 화음을 만들 때는 천상의 소리로 변한다.
마지막 완성은 풍물놀이와 창작관현악 “상쇠”다. 지휘자는 시작에 앞서 “‘풍물’을 농악’이라 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는 일제 잔재이다.”라고 지적했다. 가끔 전통타악이라 하는 공연을 보면 국적불명의 소리와 몸짓으로 아쉬움을 주기도 하는데 이날 출연한 ‘방승환전통타악연구소’ 치배들은 지휘자의 말에 화답하듯 뿌리 깊은 공연을 선보여 청중들의 환호를 받았다. 특히 뻣상모와 채상모를 쓴 치배들의 화려한 동작은 청중의 눈을 사로잡고, 버나돌리기와 12발상모놀음은 청중들이 절대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무대가 좁아 다양한 진법 짜기를 선보일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앙증맞은 북청사자놀이까지 선보여 공연의 마지막을 기가 막히게 장식했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상임지휘자인 박호성 단장은 공연을 끝내기 전 말한다. “21년 전 왜 애국가가 서양음악으로 연주되어야 하는지, 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국악으로 연주될 수 없는지, 왜 학교에서는 국악을 가르치지 않는지를 고민하면서 초등학교 무료 순회연주를 시작한 지 벌써 21년이나 되었다. 순수 민간악단으로 존재하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만났지만, 오늘 자리를 함께 하고 힘찬 추임새를 넣어준 청중 여러분 덕에 우리는 앞으로도 건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더욱 힘을 낼 것이다.” 그렇게 다짐하는 박 단장에게 우렁찬 환호를 터트리고 재청을 요구한 청중들. 아마도 그들은 아름다운 봄밤 세종임금과 함께 하는 꿈을 꾸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세종이 된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