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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그리고 우리말

‘뫼’와 ‘밥’이 합성된 말 “묏밥”

재미있는 우리말 말밑 이야기 3

[그린경제=반재원 소장]  묏밥은 같은 뜻인 뫼와 밥이 합성된 낱말이다. ‘뫼’는 새나 닭의 ‘모이’ ‘모시’에서 나온 것으로 보기도 하며 가정에서 제사지낼 때 올리는 제사밥으로도 보며, 또 절에서 제사 올릴 때에나 부처님께 올리는 밥에서 연원 하였다고도 보고 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뫼 - 사람의 무덤. 묘(墓). 산소(山所).
묏-자리 - 뫼를 쓸 자리, 또는 쓴 자리. ~를 보러 다니다.
묘 - 뫼. ~를 쓰다
                                             (이기문. 임홍빈. 두산동아. 참 국어사전) 

뫼 - 높은 어른의 끼니 음식. 뫼 들이다(供飯).
                                    (신기철. 신용철. 삼성 출판사. 새 우리말 큰사전)

뫼 - 몯>못>모시>모이>뫼. 음식.
모시다 - 못(몯). 어른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
뫼 - 제사지낼 때 드리는 밥.
                                               (서정범. 보고사. 국어어원사전) 

지금은 기제사를 모두 집에서 지내지만 원래는 산소에 가서 지냈다. 그것이 지금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을의 묘사(세일사) 때에만 조상의 산소에 가서 지내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뫼가 제사상에 올리는 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삼황오제 시대에 종묘(사당)에 제사 지내는 역할을 맡았던 중부일계中父日癸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중부일계 곤(鯀)은 비록 왕위에는 오르지 못한 인물이었지만 삼황오제 시대를 통털어 정치권의 중심에서 무소불위의 대권을 행사하였던 인물이다.  

그의 딸인 간적(簡狄)이 그 당시 임금인 제곡고신(帝嚳高辛, 재위 55년. 기원전 2420년~2366년)의 둘째 왕비요, 또 누이인 종규(終葵)가 제곡고신의 정비(正妃)였으니 중부일계 곤은 임금의 장인어른이자 처남이었다. 그리고 딸 간적이 낳은 세 아들 지(摯), 직(稷), 우(禹) 중에서 지(摯)는 다음 왕위에 올랐으며, 우(禹)도 요와 순에 이어 왕위에 올랐으니 그들은 모두 곤의 외손자들이었다.  

그런 관계로 곤은 제정 일치시대에 가장 중요한 종묘의 제례를 총괄하는 제례관의 직책을 맡아 종묘제례를 혁신하여 그 격식을 정립하였던 인물이다. 중부일계(中父日癸) 곤(鯀)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계뫼(癸△,)였다. 즉, 뫼가 처음으로 제사 밥(그때는 쌀밥이 아니라 피밥이었다)을 올리던 풍습에 따라 후세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따서 뫼라고 하였으며, 무덤에 뫼를 올리는 일을 ‘뫼사’ ‘묘사(墓祀)’라고 하고 무덤도 ‘뫼’ ‘묘’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은 고구려 이전까지 우리 겨레의 무덤 모양이기도 하다.  

중국 서안에는 피라밋 군락지가 있다. 중국내에 이러한 대형 피라밋이 100여개나 산재해 있다. 이것은 1945년에 이곳을 비행하던 독일 주둔 미국 수송기 조종사의 항공사진 촬영과 보고서에 의하여 세상에 밝혀졌다. 그 뒤 1973년에 실시한 고고학계의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하면 진시황 무덤보다 수천 년이 앞선 5~6 천 년 전의 것으로 황하문명 이전 것이라고 한다.  

중국은 처음에 이 사진과 보고서를 조작된 것이라고 계속 발뺌하였다. 그 후 서구학자들의 발굴요구 및 케이블방송 보도 때문에 중국내의 일부 학자들도 그 존재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발굴기술과 유물보존 기술이 부족해서 다음 세대로 발굴을 연기하게 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중국 집안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무덤도 피라밋 모양이다. 북한의 단군릉을 피라밋으로 복원한 것도 이러한 우리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원래의 시원 글자가 △이다. △은 또 ‘집(集)’이나 ‘가(家)’의 시원 글자이다. 또 △은 사당대문의 솟을지붕의 모양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묘(廟)를 뜻하는 글자가 되었으며 이것은 종묘(宗廟) 제례를 관장하던 곤의 별명이었다. 또 흔히 뫼는 산을 말하는 것이므로 산천에 지내는 제사 때 올리던 밥이라 하여 뫼밥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그러나 만약 산이 뫼라면 양사언의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시조에서 ‘태뫼가 높다하되’로 하여 태산을 왜 태뫼라고 하지 않고 무덤만 ‘하늘아래 뫼’라고 표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여기서 보듯이 산은 산이고 뫼는 묘소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태산이 높다하나 하늘에 견주면 하나의 작은 묘(무덤)라는 말이다. 산을 뫼로 하여 ‘태뫼가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라고 해서는 문장이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신기철. 신용철의 <새 우리말 큰사전>에 ‘뫼’를 ‘끼니 음식’으로 본 것이나 서정범 교수의 <국어어원사전>에서 ‘뫼’를 ‘음식’ 또는 ‘제사때 드리는 밥’으로 본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묏밥은 뫼와 밥의 합성어로 ‘뫼’가 애초에는 산이라는 뜻보다는 제사 때에 무덤에 밥을 올린 곤의 이름인 ‘뫼’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또 절에서 부처님께 올리는 밥에서 연원 하였다고도 보는 이도 있으나 절에서는 묏밥이라는 말이 없고 ‘공양’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절에서 유래된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