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경북 의성 사촌마을 만취당(晩翠堂)고택 옆에는 나이가 무려 500년이나 된 향나무 한그루가 고고한 자태로 서있다. 이 나무는 이 마을 입향조(入鄕祖)의 증손자인 송은 김광수(1468~1563) 선생이 심고 절조를 지킨다는 뜻으로 향나무에 만년송(萬年松)이라 이름 지었다. 송은 김광수(松隱 金光粹, 1468-1563) 선생은 1501년 (연산군 7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어 청운의 꿈을 안고 성균관에서 금원정, 김안국 등과 학문을 익히다가 연산군의 정란을 미리 예견하여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 경북 의성 사촌리 만취당 앞에 있는 500년 된 향나무 만년송
그로부터 수년 뒤 선생의 예견대로 갑자사화(1504), 중종반정(1506), 기묘사화(1519), 을사사화(1548)가 일어나 처형되거나 귀양 간 선비 들이 수백 명에 이르렀고 피해자는 주로 사림의 이름난 선비들이었다. 선생은 낙향 뒤에 소나무를 사랑하여 스스로 호를 송은처사(松隱處士)라 짓고 마을 앞산 기슭에 영귀정을 지어 자연을 벗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선생이 지은 만년송시(萬年松亭韻)는 당시 널리 회자되었으며 “늙어서 증직을 구하지 말고 후진을 가르치라”는 유언을 남기며 청빈한 삶으로 생을 마감했다. 송은 선생의 그 유명한 만년송 시를 감상해보자.
묻노니 저래산 떠나온 지 몇해련고
만년송 푸른 그루 고이고이 심었노라
맑은 향 은은하게 시축(詩軸)에 풍겨오고
송화가루 날아서 벼루에 떨어진다
푸른 잎 무성한데 새소리 한가롭고
늙은 줄기 이끼끼니 인갑(鱗甲)인양 아롱진다
은사(隱士)의 동산에 우뚝 서있으니
심상한 저 속사(俗士)야 몰라준들 어떠리
이끼 낀 오솔길이 홍진에 막혔으니
그윽한 흥을 찾아 날로 기분 새로워라
후미져 으슥한 곳 차마(車馬) 어이 오랴마는
집이 가난하다 앵화(櫻花)야 싫어 하랴
산을 보고 앉았으니 어깨는 서늘하고
베게 돋워 잠이드니 푸른빛이 낯을 덮네
만년송 그늘 속에 한가로운 이 몸이라
아름다운 사시풍경 나 홀로 기뻐하리
▲ 만취당 종택 전경
▲ 한석봉이 쓴 만취당 편액
모진 풍상 속에서도 의연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늘 푸르게 서있는 만년송! 이를 흠모하여 의성지역에 군수나 현감이 부임하면 으레 만년송의 안부를 묻는 것이 상례였다니 만년송의 자태를 어찌 가벼운 벼슬아치에 비하랴! 만년송은 높이 8m, 둘레 2.2m인 자단향나무로 비교적 수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1995년 경상북도기념물 제107호로 지정되었다.
송은 선생 이후로 만년송을 보고 읊은 시문은 책으로 하나 엮고도 남을 만큼 많다. 요즘 사람들 같으면 사진이나 찍고 가겠지만 먹을 갈고 의연히 앉아 만년송을 읊었던 옛 선인들의 정서는 향나무의 자태처럼 곱고 어질어 보이기만 한다. 시 몇 수를 더 소개한다.
▲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34호 영귀정(詠歸亭)
울타리 주변 담장 모서리 오랜 세월 서 있으니
만세토록 푸른 자태 항상 보존하여라
잎 사이 스친 바람 비 뿌리는 소리 같고
가지 사이 달 그림자 정원에서 어긋나네
푸른 빛 성한 모양 쓸쓸함을 넘어서고
맑은 향기 아름답고 멀리 보면 더욱 좋네
오늘날의 고상한 성취 사람들은 모르지만
지금도 저 노송은 넉넉히 알고 있네
- 남애 김상원(1598-1687)
산 속에 숨어 살며 풍진세상 멀리하고
공원 속에 늙은 솔 사시로 새롭구나
높은 가지 맺은 약속 진실로 정취 이루었고
전해오는 좋은 나무 어찌 청빈을 한할 손가
긴 낮 짙은 나무 그늘 안석을 침노하고
깊은 밤 차거운 이슬 옷과 갓을 적시누나!
오늘날 후손들의 가슴 속 느낌
이웃집 사람들과 서로 말하리라
-사오 김상기(1602-1670)
후손들은 어느 곳에 꽃다움을 즐기는가
뜰 가의 외로운 솔 스스로 새롭도다
빽빽한 잎 늘 푸르러 서리에도 변함없고
늙은 가지 성글어서 달빝이 스며있네
맑은 넋이 빛을 입어 밝게 돌아오니
그 형태 적막하여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
동지섣달 품은 회포 누가 알려나
공경스런 몇 마디 말로 사람을 깨우치네
-옥계 김상유(1605-1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