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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 김영희 닥종이 인형전

[독자얼레빗 126]

[그린경제=조민희 독자]  “바람에도 색깔이 있었다. 수선화에 묻어오는 바람 다르고, 아기 기저귀 냄새에 묻어오는 바람 다르고, 더군다나 머리카락 긴 청년의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바람이 달랐다. 나는 어느덧 예술가의 싱싱한 위치를 차지한 여자인줄 알았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엄마 역할에 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이 일어나는 날은 혼자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몇 정거장 가다가 한적한 간이역에 내리면 한적한 바람이 거기에 몰려 있었다. 설거지 군내에 절은 여인이 그 껍질을 깨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한가위를 맞아 집안 대청소를 하다가 문득 허리를 폈는데 마침 눈높이의 책장 속에 한 권의 책이 번쩍 눈에 들어왔다,.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를 쓴 닥종이 인형작가 김영희 씨 책이었다. 책을 펴낸 날짜를 보니 1992년 2월에 나온 책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이야기다. 그때 내 딸들은 막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지금은 서른이 넘은 아기 엄마다. 그렇담 김영희 씨는? 그는 올해 일흔이다.  

   
▲ 고기잡이 막내 '프란츠'(왼쪽), 노란풍선 부는 아이 (김영희의 아이들 닥종이전에서)

많은 사람들이 닥종이 인형 작가 김영희 씨를 기억하지만 내가 유달리 김영희 씨를 기억하는 까닭은 그가 살던 아파트에 내가 살았기 때문이다. 개봉동의 원풍아파트는 재건축으로 헐려 지금은 낯선 이름의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예전에 김영희 씨는 그곳에 살았다. 알콩달콩 살던 남편과 사별하고 14살 연하의 독일 청년과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그는 올망졸망한 유진, 윤수, 장수 세 아이를 데리고 독일로 떠났다.

나도 오래지 않아 원풍아파트를 떠났다. 그 뒤 그가 나를 기억해주지도 않건만 나는 김영희 씨의 책을 열 번도 더 읽었다. 그러면서 토종 흙냄새가 잔뜩 풍기는 닥종이 인형이 결코 거저 만들어 지는 게 아니란 걸 비로소 알았다.

그때부터 김영희 씨의 닥종이 인형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을 쉽게 볼 수 없게 된 뒤에는 누구의 작품이건 닥종이 인형전은 빠짐없이 보러 갔던 기억이다. 닥종이 인형과 연애에 빠진 것이다.

그러던 참에 지난번 조선일보미술관(7월 19일~8월 25일)에서 만난 '김영희의 아이들 닥종이전’은 색다른 감동의 시간이었다.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 그가 만든 인형 속에서 나는 그의 아름다운 영혼을 느낀다. 그의 분신 같은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하면서 한 예술가의 질곡의 시간들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 느낌을 받았다. 아주 행복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좋은 작품을 창작해주길 그리고 김영희 씨의 건강을 빌어본다. 

                                 독자 조민희  / 교사, 서울 종로구 가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