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 이윤옥 기자]
100년 편지에 대하여..... 100년 편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년(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입니다. 내가 안중근의사에게 편지를 쓰거나 내가 김구가 되어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역사와 상상이 조우하고 회동하는 100년 편지는 편지이자 편지로 쓰는 칼럼입니다. 100년 편지는 2010년 4월 13일에 시작해서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100년 편지에 동참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매주 화요일 100년 편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문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02-3210-0411 |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을 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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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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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 선생님! 선생님은 미음 한모금도 넘기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가슴 찡한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그 보다 앞서 “사회의 부담을 덜기 위해, 가족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더는 연연하지 않고 깨끗이 떠나간다”는 친필 유서를 남기시면서 주사도 거부했다고 들었습니다. 목숨이 경각인 지경에 이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숨을 부지하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조선의용군 출신답게 선생님은 “병원 주사, 절대 거부”를 고수하시다가 2001년 9월 25일 오후 3시 39분 연길에서 끝내 숨을 거두셨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의 병환은 2001년 6월 3일 고국 방문 길에서 얻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선생님은 경상도 밀양시 북부면 제대리 야산의 가파른 기슭에 모셔진 박차정 여사의 무덤을 찾아가서 “누님! 제가 부하로서 약산 선생을 잘못 모셔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라며 오열하셨다지요? 조선의용대 김원봉 대장의 부인인 박차정 여사를 평소 누님처럼 따랐던 선생님이시기에 37세의 나이로 독립운동을 하다 숨진 박차정 여사님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웠을 겁니다.
김학철 선생님!
약산 김원봉 선생이 그렇고 박차정 선생이 그러하듯 선생님은 중국의 광활한 대지에서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다 숨진 우리겨레의 수많은 영령들의 빛이요, 중국의 200만 조선족 동포와 조국의 독립운동사에 영원히 지지 않는 역사의 나침반이 되는 삶을 사셨다고 생각합니다.
2005년 8월! 중국 산서성과 하북성을 가로지른 거대한 태항산 기슭 호가장 보리밭 언덕에 김학철, 김사량 항일문학비가 세워지던 날은 호가장 전투가 있은 지 65주년 만이라 더욱 뜻 깊었습니다.
돌아보면 선생님의 삶은 저항 자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것은 불의에 눈감을 수 없는 선생님의 피돌기에 흐르는 그 무엇이 선생님을 그렇게 내몰았을지 모르지만 20세기에 극심한 파시스트를 뒤엎은 뒤 독립국가 안에 독버섯처럼 들어앉은 새로운 권위주의와 정치권력에 대해 선각자가 없을 만큼 황폐한 상황에서 선생님은 목숨을 걸고 그 권위주의와 정치권력에 도전장을 낸 투사이셨으니 어지간한 담력의 소유자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선생님의 삶의 절반은 항일투사요, 절반은 문학가로서 창작 활동에 몰두하셨습니다. 특히 영어, 일본어, 중국어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접목시켜 선생님 특유의 독창적인 비유와 풍자, 익살과 해학으로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비록 조선족 작가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선생님은 중국의 그 어떤 작가의 추종도 불허하는 잠재문학(潛在文學)의 기수요, 대표이며 파렴치한 독재와 부패한 정치권력에 맞서 싸운 아시아의 대표적인 지성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치열했던 호가장 전투에서 한쪽 다리를 잃고 실의와 절망에 잠기는 대신 총칼을 붓으로 바꾸어 들고 이승만, 김일성, 모택동이라는 거대한 우상에 차례로 도전하였으며 어두운 철창 속에서도 내일 떠오를 태양을 의심하지 않았던 불굴의 정신은 대관절 어디에서 나오는 힘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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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남한의 문인들과 왼쪽 두 번째 목발 짚은 분이 김학철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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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세에 반동분자로 숙청당해 24년간 감옥을 드나들면서도 창작의 끈을 놓지 않으시고
85세에 이르기까지 숱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날실과 씨실로 엮어내신 그 위대한 정신 앞에 절로 고개가 수그러듭니다.
김학철 선생님!
며칠 전, 고추잠자리가 살살이꽃 주위를 맴돌던 날 저는 시내 책방에 나가 ‘김학철 평전’을 한 권 사들고 와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목발을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한 모습의 흑백사진 표지가 왠지 정겨워 책꽂이에 꽂지 않고 그냥 액자처럼 세워두고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첫 장에 남기신 말씀! 오래도록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을 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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