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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금석문톺아보기 55 ] 당평제비(唐平濟碑)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정림사지

[그린경제/얼레빗 = 정석현 기자]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東南里)에 있는 화강석으로 만든 방형(方形) 5층 석탑 제1층 사면(四面)에 새겨져 있다. 같은 비문이 새겨져 있는 석제 유물(石槽)이 구부여군아(舊扶餘郡衙)의 부지내(敷地內)에서 발견됨으로서 평제비(平濟碑)가 두 가지임이 밝혀졌다.

그런데 여기에서 어느 것이 원본(原本)이고 어느 것이 복각(復刻)인가, 아니면 원(原) 비석은 따로 있고 두 가지 모두 복각인가 하는 문제와 소위 평제탑이 이 비명(碑銘)을 새기기 위해서 세워진 것인가, 아니면 전부터 있었던 탑을 이용해서 거기에 비명을 새긴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부여군현지(扶餘郡縣誌)』에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을 인용하여 “그 비는 현서2리(縣西二里)에 있고 소정방(蘇定方)이 김유신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킴에 이르러 ‘입석기공(立石紀功)’했다”고 하는 점, 또 지금의 소위 평제탑이 현남2리(縣南二里)에 있는 점, 당시 소정방보다 하위(下位)에 있던 유인원(劉仁願)을 위해서 따로 비가 세워져 있는 점으로 보아 재래의 탑에 새겼다기보다는 소정방을 위해서 따로 특별히 따로 현서이리(縣西二里) 지점에 비를 세웠다고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따라서 『동국여지승람』 편찬 후 군현지 편찬 때까지 사이에 진짜 비가 없어지고 그 복각인 탑문(搭文)만이 세상에 알려져 군현지에는 그것을 평제비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정방의 지위나 역할로 보아 원래 있던 백제의 대표적인 탑에 그 공을 새겨 넣었을 가능성 또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 당평제비(唐平濟碑)

소위 당평제탑(唐平濟塔) 제1층의 탑신(塔身)은 높이 136.4cm, 폭 218.2cm이다. 제1면은 24행, 제2면은 29행, 제3면은 28행, 제4면은 36행 등 총 117행이며 각 행은 16자 또는 18자인데, 자경(字徑)은 4.5cm로 해서체(楷書體)이다. 제액(題額)은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의 8자를 2행으로 전서(篆書), 그 아래에 ‘현경(顯慶) … 계미건(癸未建)’이라고 2행으로 각서(刻書)했는데 전서체(篆書體)이다.

연대는 신라 660년(무열왕 7)이며, 내용은 대체로 소정방의 기공비(紀功碑)로서 당(唐) 고종(高宗)이 문무왕과 힘을 합쳐 백제를 쳐서 사비성(泗沘城)을 함락시키고 마침내 이를 토파(討破)한 사적을 기록한 것이다. 문장은 사륙병려체(四六騈驪體)로 과대(誇大)한 필치를 사용하였고, 서체(書體)는 정해(正楷)로 당조(唐調)에 육조(六朝)의 여풍(餘風)이 가미되었다. 당(唐) 학사(學士) 하수량(賀遂亮)의 글에 당(唐) 학사(學士) 권회소(權懷素)가 썼다.

연대:백제 660년
현재 높이 8.33m(?)
출토지: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정림사지
출처<한국금석문종합정보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