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홋카이도 이윤옥 기자] 죠잔스님이 개척해 놓은 죠잔케이온천(定山渓温泉)마을에 도착 한 것은 저녁 5시 무렵이었다. 그러나 사방은 어둠이 짙게 깔려있다. 벌써 홋카이도는 밤이 시작 된 것이다. 치토세공항에서 1시간 반 달려서 도착한 온천마을은 깊은 산속답게 적막 속에 쌓여있다.
내린 눈이 한길이나 쌓여 있어 예전 같으면 사람의 왕래도 드물었겠지만 지금은 홋카이도의 명소가 되어 찾는 이들이 많다. 홋카이도의 개발 역사는 명치시대(1868년)로 거슬러 올라가듯이 이곳 죠잔케이 온천 마을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은 미이즈미죠잔(美泉定山, 1805-1877)스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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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맞고 서있는 죠잔스님 동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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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치 40년(1908) 죠잔케이 온천 마을을 개발할 때의 사진 |
죠잔스님은 1805년 일본의 남쪽 지방인 오카야마에서 태어나 17살에 출가하여 당시로서는 멀고도 험한 아키다현(秋田県)으로 포교차 떠나 온 이래 48살 되던 해인 1853년 이곳 홋카이도에 정착한다.
61살 때인 1866년 당시 아이누족에게 이곳에 온천물이 샘솟고 있음을 전해 듣고 찾아왔으나 길도 나지 않은 깊은 두메산골이었다. 이후 스님은 정부관리에게 이곳에 도로를 놔달라고 민원을 내어 도로가 개설되자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게 되었다. 그래서 스님의 이름을 따서 이 온천마을 이름이 죠잔(定山)이 된 것이다.
홋카이도의 첫날 숙박은 바로 죠잔스님이 온천을 맨 처음 발견하고 이곳에 절을 지었던 자리에 들어선 죠잔케이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곳에도 한류바람은 여전해 1층 로비에는 치마저고리를 곱게 입은 인형과 함께 한류스튜디오라고 해서 한복 체험관이 마련되어 있으며 저녁 뷔페 식단에는 잡채, 김밥, 떡볶이, 부침개 따위 다양한 음식이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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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홋카이도에 부는 한류, 호텔 로비에는 한복체험관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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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복체험관 홍보전단 |
저녁을 먹고 눈이 한길이나 쌓인 온천마을을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 간간이 가로등 불만 고즈넉한 홋카이도의 밤을 밝히고 있다. 마을 곳곳에 무료 족욕탕이 있어 언제라도 족욕을 할 수 있게 해 놓은 것이 특이하다. 발을 벗고 온천물에 발을 담그니 싸늘한 바람 한자락이 볼을 스치운다.
문득 일제강점기에 혹한의 땅 북해도로 강제 연행되어 와서 아사지노비행장(浅茅野) 건설과 탄광 등지에서 중노동으로 혹사당하다가 죽어간 조선인들의 고단한 삶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지나간다. 그것은 저 아래 지방 큐슈 공업지대의 치쿠호 탄광에서 죽어간 동포들의 비참한 삶과 다르지 않을 것이리라는 생각에 미치자 콧등이 쏴하다.
문득 일제강점기에 혹한의 땅 북해도로 강제 연행되어 와서 아사지노비행장(浅茅野) 건설과 탄광 등지에서 중노동으로 혹사당하다가 죽어간 조선인들의 고단한 삶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지나간다. 그것은 저 아래 지방 큐슈 공업지대의 치쿠호 탄광에서 죽어간 동포들의 비참한 삶과 다르지 않을 것이리라는 생각에 미치자 콧등이 쏴하다.
발끝에서 올라오는 이 따스한 온기는 어쩜 조상들의 피땀으로 누릴 수 있는 호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홋카이도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